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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03. 2021

기본은 인정하는 마음

어르신의 기본은 늙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르신이 되었음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아파트 현관문이나 사무실 도어록 앞에 섰을 때 ‘비밀번호가 뭐였지? ‘하는 당황함을 느껴본 적 없는가? 나이 들면 단기 기억에 문제가 먼저 생긴다고 하는데 그 문제는 오래전에 이미 와있다. 한 학기가 끝나도록 수강생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전화번호나 남의 집 동호수 기억하는 것을 포기한 지 한 참됐다. 가장 값싼 항공권을 찾기 위해 이 앱 저 앱 뒤지다 보면 방금 전에 본 요금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몇 년 이상 거의 매일 찍어대던 도어록 비밀번호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은 치매가 결코 남들의 이야기만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생각이나 판단도 예전만큼 빨리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내게 적합한 통신요금조차 확신을 갖고 선택할 수 없다. 인터넷 공급사업자를 변경하면 현금 얼마에 상품권 얼마라는 광고에도 선뜻 전화하지 못하는 것은 판단능력도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가끔 방문하는 맥도널드 주문판 앞에서 멍해졌다. 추가 주문을 자꾸 권하고 품목 변경의 옵션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인공지능 앞에서 왠지 짜증이 난다. 습관적인 일상은 어제처럼 오늘도 돌아가지만 새로운 일에 부딪히거나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능력은 젊은이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신뿐 아니라 육체도 늙어간다. 눈도 잘 안 보이고 몸도 예전 아니 어제 같지 않다. 오십견, 족저 근막염, 추간공 협착증, 팔꿈치 터널 증후군, 손가락 관절염 등 육체의 거의 모든 부분이 문제를 안고 있다. 육체적 노화를 이길 장사 없다. 꾸준한 운동만이 육체적 노화를 조금 늦출 뿐인데 재미없는 꾸준한 운동을 하기는 담배 끊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몸이 중고차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 중의 하나가 중고차에 생긴 문제를 진단하여 값싸게 수리하는 것이다. 중고차는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끊임없이 수리하며 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육체도 아끼고 수리(?)하면서 살아야 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18홀을 전부 걸으면 힘들고 특히 드라이버 비거리는 확실히 많이 줄었다. 어프로치나 퍼팅의 정교함도 많이 떨어졌다. 어떤 날은 돈 쓰고 시간 쓰고 몸 쓰면서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자주 들다 보면 결국 골프도 접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새벽 골프는 접었다. 새벽부터 밤잠 설치고 일어나기도 싫고, 시간에 쫓기며 화장실에 앉아 있기도 싫다. 그만큼 흥미가 떨어졌다. 골프 실력이 떨어진 것은 나이 들어 노쇠해졌기 때문인데 남 탓하거나 나 자신에게 짜증 내지 말고 그냥 인정하자.


운전이나 주차도 많이 어눌해졌다. 장거리 운전은 부담스럽고 특히 야간 운전을 피하게 된다. 남의 차 얻어 타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이미 노인이 된 것이다. 운전대는 가능한 한 오래 붙잡아야 한다. 운전을 못하게 되면 자유를 제약받으니 행동반경이나 자유의지가 줄어든다. 보행기 도움받기 직전까지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 꾸준한 운동이 노화를 조금 늦추듯이 꾸준한 운전 역시 노화를 늦출 수 있다.


살 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 내야 하는 시간이 젊은 사람들보다 짧다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노화는 인류의 진화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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