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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30. 2021

감사합니다.

아버지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동생과 둘이서 지켰습니다. 아침에 주치의로부터 위급하다는 문자를 받고 새어머니와 동생에게 알렸습니다. 오전에 병실로 아버지를 보러 갔을 때만 해도 그날 밤에 돌아가시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제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으니깐요. 심지어 다음날 저는 골프를 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으니까요. 늦은 오후에 다시 주치의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번엔 호출 사유에 임종이란 단어가 있었습니다. 혹시 밤을 새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저녁 열 시에 본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셨습니다. 산소포화도는 80을 넘지 못하고 잠시 후에는 2인실에 계시던 침대를 병동의 처치실이란 별도의 방으로 옮기더군요. 임종을 준비하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어머니와 며느리들은 내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동생과 둘이서 아버지 침대를 지켰습니다. 손도 잡아 드리고 이젠 편히 가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사체험을 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의식이 없어도 청각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만 계속했습니다.


영국의 어느 시인이 자신의 아버지의 임종을 경험하고 썼다는 시구절이 떠올랐습니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그렇게 쉽고 편하게 가시지 말라는 원망과 회한을 저도 느꼈습니다.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많은 문제들을 내게 떠넘기고 내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가시면 어떡하냐고...


분당 호흡수가 점점 줄어들고 맥박과 산소포화도도 함께 줄어듭니다. 거칠던 호흡은 강력한 진통제(모르핀)에 의해 수그러들었습니다.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결국 호흡이 멈췄습니다. 그러나 심장은 한동안 마지막 펌프질을 몇 번 더 했습니다. 밤 2시 28분 기기의 모든 그래프가 평탄해졌을 때 드디어 가셨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눈물 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장면은 거기 없었습니다. 담담했습니다. 간호사가 오고 당직의사가 와서 사망선고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차가워진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보았습니다. 이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장례를 치렀으면 좋았는데 장례식장이 지금 지붕방수공사 중이라 했습니다. 낮에는 지붕 깨는 소리가 종일 들린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그 밤에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옮겨야 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 아버지를 모신 시각이 새벽 다섯 시였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빈소 옆에 호텔 스위트룸 같은 방이 있었습니다. 제 아들과 둘이 이틀을 자며 빈소를 지켰습니다. 첫날은 전날 밤을 새워 정신이 없었고, 둘째 날은 그냥 잘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인지 장례식장에서 문상객들에게 술을 대접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기대하고 오셨던 문상객 몇 분에게는 죄송했습니다. 발인 전 날 밤에 제 아들과 아버지 영정 앞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아버지도 소주를 참 좋아하셨는데 하면서 둘이서 무려 네 병이나 마셨습니다. 결국 다음날 발인하고 화장하고 납골(납골묘 준비가 하루 만에 되더라고요)을 하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1993년에 아버지가 천안공원묘원에 자리를 마련하시고 2007년에 계약자를 저로 변경하였습니다. 그 해에 아버지는 황반변성 진단을 받으셨고, 그 이후 여러 번 낙상하셔서 입원도 하시고 맹장염 수술과 뇨관암 수술도 받으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15년 동안 병원 나들이가 외출의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크고 긴 통증 없이 가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입관을 하면서 동생이 아버지를 잡고 처음 울더군요. "아버지 하늘나라 가서 예쁜 여자 운전기사가 모는 자율주행 자동차 타고 골프 치러 가세요!" 하면서. 그때는 저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문화가 천천히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고 알렸지만 많은 분들이 어려운 시간 내어 직접 문상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멀리서 위로의 뜻을 전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란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1년 4월 30일

윤재건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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