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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02. 2021

아버지와 자율주행 자동차

삼우제까지 치른 다음날 일요일 아침 하늘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제부터 뿌리던 비가 밤새 그쳤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거실 창으로 본 하늘의 구름이 정말 근사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멋진 하늘을 아버지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 94세를 몇 개월여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자신의 자동차 처분을 제게 맡기셨습니다. 이미 10년 정도 된 SM7이었는데요. 6기통 3500cc에 최고 사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주행거리는 겨우 13,000 킬로미터 정도였고 지하주차장에 허구한 날 세워져 있던 차는 새 차의 광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고차 시장에 내놓기는 아까와 친한 후배에게 팔아드렸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의 나들이(주로 병원)는 동생과 제가 번갈아 모셨습니다. 집에서 낙상하셔서 압박골절도 몇 번이나 있었기에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거의 집에 누워만 계셨는데 종일 라디오를 이어폰으로 귀에 꽂고 계셨습니다.


몇 달 전에 저더러 자율주행 자동차를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전부터 자율주행 자동차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현대자동차 디자이너인 손자와 통화해서 차를 추천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차에 올라타지도 못하시면서 자동차에 집착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여러 번 지난밤에 골프 치는 꿈을 꾸셨다고도 했습니다. 염화회(염색공장 사장들의 골프모임)에서 지난 대회 본인이 우승해서 이번 대회 상품 스폰서 하러 가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골프를 접은 지도 근 10년이 되어가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니, 이제 치매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입관식에서 동생이 아버지 잡고 울면서 하던 말이 오늘에서야 이해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늘나라 가서 예쁜 여자 운전기사가 모는 자율주행 자동차 타고 골프 치러 가세요!"

동생과의 대화 중에 아버지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사면 여자 운전기사가 따라온다고 했답니다. 그 당시에는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자 운전기사가 누구인지 지금 깨달았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운전기사가 필요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는 보통 젊고 예쁜 여자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는 그 낭랑한 내비게이션 안내 목소리를 자율주행 자동차의 여자 운전기사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이동의 자유를 원하셨습니다. 종일 침대에 누워 골프 치는 꿈을 꾸셨습니다.

아들들이 함께 살며 자주 나들이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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