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보며 죽음을 생각한다.
당산역 부근 음식점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퇴근시간 부근에 시내를 운전한다는 것은 가능한 피할 일이다. 한잔 걸치고 대리운전을 시키는 것도 난 즐기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보며 지하철을 타고 가다 문득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는 시가 생각났다. 강을 건너기 위해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눈이 오는 것을 본 승객들의 반응을 그린 시가...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윤제림-
합정역을 지나며 혹시 눈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워졌지만 눈이 올 시기는 아직 아니다. 지상으로 올라서며 주위가 환해졌을 때 서쪽 창문들을 통하여 저녁노을을 보았다.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을... 완벽한 시간에 좋은 자리에 앉아 엄청난 광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 역시 운이 좋은 놈이라고...
노을을 보며 죽음을 생각한다. 잘 죽고 싶다. 아프지 않게...
잘 죽고 싶다는 마음은 잘 살고 싶다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잘 살아왔는지? 잘 살고 있는지? 잘 살 것 같은지? 어떻게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을까?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다 읽었다. 근처에 사는 딸이 자기 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려달란 것을 내가 먼저 읽었다. 3대에 걸친 심시선 가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너무 많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에 담은 것 같아 불만스럽지만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작가의 속마음을 많이 드러내 보였다. 미소 짓게 만드는 정말 재미있는 표현들이 워낙 많아 거의 단숨에 읽고 말았다. 장편소설을.
심시선 씨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두 딸과 아들을 낳았다. 혼혈이다. 한국 땅에서 혼혈로 산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혈연중심의 가부장적이고, 출세지향적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혼혈로 살아간다는 것은 차라리 외국인으로 사는 것만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에 대한 시선, 혼혈에 대한 시선,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시선 모두 결코 좋을 수만 없다. 소설이 끝나기 전에는 혼혈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에 대한 것이 나오겠지 나오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결국은 내 기대를 박살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신 있는 자식들의 이야기로 해피엔딩이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주인공 심시선 여사는 아들 딸 네 명과 손주 다섯 명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영감을 주고, 많은 개인적인 추억거리를 만들고, 본인의 생일 다음 날 새벽 갑자기 돌아가셨다. 너무나 급작스럽기에 자살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치열하게 살면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뿌리고 홀연히 떠났다.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살다가...
나도 이렇게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