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Nov 21. 2021

심시선 여사의 어록

잊히고 싶지 않은 것은 본능이다.


심시선 여사는 정세랑 님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주인공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자로 나고 자란 내게 소설의 어떤 부분은 분명 거부감이 있었지만 많은 부분들은 신선한 충격을 내게 주었다. 여인들의 관점과 생각은 흥미로웠다. 그래서 단숨에 읽고 말았다.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제사 문화에 대한 것이다. 사라져야  관습일 뿐이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혹시 제사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심지어 매일 학교에 가는 것까지...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란다. 대화나 이해는 친구들과 하는 것이지 남편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남자들은 눈에 렌즈가 하나 빠져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단다. 남자와 여자가 달라도 엄청 다르다는 것은 나도 안다. 가끔 잊고 살뿐이다.

"사흘에 한 번씩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 말고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쩌면 이즈음 젊은 남자들이 결혼을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혼을 결심한 여자가 드물어...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아주 익숙한 문장이다. 이 소설이 2020년 6월에 나왔으니 누가 이 문장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 역시 자살이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2020년 7월에 처음 깨달았으니...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든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인생을 걸고 시도해볼 만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기업에서 만 6년을 근무하고 퇴사하여 이즈음 제주도에서 거의 매일 물질(프리다이빙)하거나 낚시하고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 물질과 낚시가 그렇게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거기서 인생을 찾아야 한다.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러려던 건 아닌데,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보다는 글로 고착시키는 걸 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시키는 바람에.... 말이란 건 그렇습니다. 일관성이 없어요. 앞뒤가 안 맞고, 그때의 기분 따라 흥, 또 다른 날에는 칫, 그런 것이니까 그저 고고하게 말없이 지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도 합니다." 말보다는 글이 좋다는 것에 동감한다. 글은 자신이 사랑한 것을 불멸화하려는 시도다.


이 소설을 내게 추천한 딸에게 물었다. 바빠서 읽지도 않고 내게 왜 추천했냐고?

"남은 가족들이 하와이 여행 가서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아빠가 생각나더라고. 아빠가 우리한테 이런 제사받기를 원할 것 같다는..."


잊히고 싶지 않은 것은 본능이다.


함께 여행했던 곳을 다시 가서 지금은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추모하는 방법으로 이 보다 좋은 방법 있을까 싶다. 좋은 곳은 세 번 가야 한다. 처음엔 너무 흥분되어 어쩔 줄 모르지만, 두 번째 가면 찬찬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가면 익숙해져서 집에 온 듯 편안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에서 노을을 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