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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06. 2021

재미의 발견

인생이 행복하길...


아들( https://brunch.co.kr/@jkyoon/313 )이 보고 싶어 제주도로 날아갔다. 


지난 3월, 6년여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 제주도 표선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충 알고 있지만 직접 보고 싶었다. 소위 원룸에 살고 있었다. 배에 싣고 간 폭스바겐 시로코( https://brunch.co.kr/@jkyoon/90 )도 거기 있었다.


"아들, 행복하냐?"

"행복하지. 일 안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고 있는데 행복 안 할 수 있겠어?"

"미래가 걱정되진 않고?"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루하루가 행복하면 됐지."

"돈은 얼마나 있냐?"

"줄라고? 있어. 달라 안 할 테니 얼마 있나 묻지 마..."


첫날 둘이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물론 소주도...

이튿날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사과 하나 먹고, 자고 있는 아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원룸을 나왔다. 성산 일출봉을 향해 시로코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듣는 시로코 디젤엔진 소리가 저속에선 심히 거슬린다. 일출봉을 오를 마음은 애초에 없었고, 식산봉도 잘 보이는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날씨가 좋아 경관이 그만이다. 살짝 정상에 눈 덮인 한라산도 선명하게 보인다. 성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표선으로 향했다. 하늘의 구름이 정말 예쁜 날이다. 거의 파도가 없어 바다는 장판 같고, 간간이 어선들이 떠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올레길 걷는 사람도 거의 없다. 겨울 바다의 무섭게 파란색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난 물이 무섭다. 표선에 거의 다다른 정오 무렵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 있냐고? 자기 깼으니 픽업하란다. 점심으로 해물라면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과 섭지코지가 잘 보이는 물썹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숙소로 가잔다. 자기는 오늘 날씨가 좋아 짬낚(짬 내어하는 낚시) 해야겠단다. 일몰까지 두 시간 정도 할 수 있단다. 숙소에서 장비를 챙긴 아들을 신천리 방파제에 내려주고 나는 근처 오름(영주산)을 올랐다. 해발 326 미터의 오름 정상에서 근사한 경치를 보고 서둘러 아들이 낚시하고 있는 방파제로 돌아왔다. 일몰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쪽 하늘이 핑크빛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아들은 저녁노을을 보며 마지막 낚싯대를 던지고 있다.


"아들, 신선이 따로 없네."


떡밥과 미끼를 엄청  뿌려 제법 큰 전갱이 한 마리를 잡았다. 잡어들 몇 마리는 그냥 놓아주었단다. 숙소로 돌아온 아들은 전갱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제 생선을 다루는데 거의 도통한 듯 보인다. 한 접시의 전갱이 회를 놓고 소주를 각 일병 했다. 식사는 짜장면을 배달시켜 해결하고....


다음 날도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아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원룸을 나와 표선 근처 일대를 운전하며 돌아보았다. 길을 잘못 들어 중산간 지역까지 올라가자 전망 좋은 집들이 많이 보였다. 정말 집들은 많은데 사람은 없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너무 조용하고 전혀 움직임이 없어서...


표선해수욕장이 잘 보이는 장소에 롯데리아가 홀로 있다. 물이 빠져 엄청난 백사장을 드러내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혼자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오늘도 날이 너무 좋다.


정오가 넘어 아들이 전화했다. 어디 있냐고? 픽업하란다. 잠수할 때 입는 슈트랑 장비를 챙겨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물에 들어가신단다. 성산 일출봉 근처 별다방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픽업하고 평대 해변으로 가잔다. 평대 해변 한적한 정자에서 잠수 슈트 차려입고 오리발, 수중카메라 들고 바다를 향해 간다.


"물이 차서 길어야 한 시간이야. 근처 카페 찾아가든지 차에서 기다리든지 알아서 혀.”

"한 시간 뒤에도 안 나오면 119에 구조 요청한다."

30분도 안되어 물속에서 나오는 아들 손에는 큼지막한 문어 한 마리가 들려 있다. 수온이 16도라 오래 못 있겠단다. 두께 3미리 잠수 슈트 입고서는. 오늘 저녁은 문어숙회를 하시겠단다. 하나로마트에 들러 무 하나랑 대파를 샀다. 그리고 소주도...


"아들, 하루는 낚시하고, 하루는 물질하고, 날씨 안 좋은 날은 쉬고.... 신선이 아니라면  최소한 귀족이네!"


“꿈이 뭐냐고 물으면 다들 행복이라고 대답하지만 실은 행복은 자유의 일부인 거잖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3편: 송 과장에 나오는 대사다. 자고 싶은 만큼 잘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행복한 사람은 자유롭다. 자유는 행복에 필수조건이다. 자유롭지만 불행한 사람도 있다. 은퇴한 어르신은 자유롭지만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일상 속에서 재미를 자주 느낀다면 행복한 것 아닐까 싶다. 재미뿐 아니라 보람도 함께 느낀다면 더 행복할 것이다. 재미와 보람을 함께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노동을 통하여 돈도 벌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아닐까 싶다. 보람 있는 일은 보통 별 재미가 없고, 재미있는 것은 보통 보람 같은 생산적인 감정과 함께 하지 않는다. 결국 둘 중에 하나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모든 현상에 유용한 에너지가 필요하듯이 모든 활동이나 행위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행위나 활동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돈이다. 그것도 제법 비싼.


아들은 재미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 6년을 갈아 넣었던 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일단 재미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재미란 무엇일까?


김정운 전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창의성과 재미는 동의어라 했다. 재미없는 노동에서 창의성을 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미있는 일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창의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성공이란 진부한 단어보다는 행복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문화부 기자였던 김승일 작가가 쓴 ‘재미의 발견’이란 책이 있다. 특이하고 전의 되고 격변이 일어나는 콘텐츠가 사람을 당혹하고 집중하게 한다고 한다.


특이: 일상은 특이하지 않다. 집과 직장을 매일 오가는 직장인, 집과 사업장을 매일 오가는 자영업자, 집과 학교를 매일 오가는 학생이 특이한 것을 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특이한 것에 자연 눈길이 간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특이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특이한 광경, 다르게 생긴 사람들, 특이한 음식...

전의: 같은 단어가, 또는 같은 문장이 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머가 대표적이다. 유머를 스마트폰 메모장에 입력하여 갖고 다니다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유머 메모장을 여는 사람을 많이 봐왔다. 창의적인 사람은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란 것도 일맥 통하는 말이다.

격변: 빠른 변화와 빠른 진행은 모든 것의 필수다. 느린 진행은 지루함을 야기하고, 빠른 변화는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핵심 요소다. 재미있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잔잔한 소설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히트한다면 히트의 원인은 시나리오가 아니고 배경 음악이나 아름다운 영상에서 찾아야 한다.


재미만 있고 보람이나 여운이 없으면 오래 할 수 없다.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아들의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성공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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