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l 05. 2022

대학 동기 모임

꿈이 더 선명해졌다.


1981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80여 명이 졸업했다. 반 이상이 박사학위 받고 교수가 되었다. 최근에는 분기에 한 번 정도 동기 모임을 가졌다. 동기 모임 참석자의 2/3 정도를 항상 교수들이 채웠다. 아무래도 교수들이 시간적 여유가 많다. 졸업한 지 만 41년이 넘었다.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하던 모임을 거의 3년 만에 했다. 불금에 동기 18명이 교대역 인근 한정식 집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이미 은퇴했거나, 두 달 뒤에 은퇴하거나, 한 학기 뒤에, 아니면  나처럼 길어야 세 학기 뒤에는 모두 은퇴할 것이다.


지난달에 장녀를 결혼시킨 친구가 감사인사를 하며 오늘 식사대접을 하겠단다. 그리고는 돌아가며 근황을 소개했다.


한 동기가 최근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계단을 오를 때 자꾸 발이 걸리고, 걸을 때 양팔의 움직임이 다르고,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채우는 것이 힘들더란다. 약을 먹고 좀 나아졌지만 진행을 늦추는 것이지 완치할 수는 없는 병이란다. 파킨슨 병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친구가 그렇다니 찾아보았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병하는데 60세에서는 1%, 65세에서는 2% 정도 발병한다. 이미 우리는 60대 중반이다.


한 친구는 최근에 TGA(Transient Global Amnesia) 진단을 받았단다. 학과장과 조교와 의사소통한 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단다. 나중에 서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교환한 것이 남아 있어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단다. 술 많이 마시고 블랙아웃되듯이 한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단다. Amnesia는 기억상실증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점점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을 치매라고 한다. 알츠하이머도 치매의 한 종류다. 알츠하이머의 호발 연령은 65세 이후이다. 퇴행성 뇌질환이 발병할 나이가 되었다.


최근 걸음걸이가 급격히 이상해진 친구는 이즈음 한의원을 찾아 체질개선을 하는 중이란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의 리스트와 먹어도 되는 음식의 리스트를 줄줄 읊는다. 65년을 먹던 음식들을 이제 와서 가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생각이 들지만  힘들게 체질개선을 통해서라도 건강을 다시 회복하겠다는 의욕에 상처 주고 싶지는 않다.


이번 학기로 은퇴하는 의욕적이고 건강한 친구는 로열젤리를 홍보한다. 꿀벌은 3달 살지만 여왕벌은 3년 산다며. 일벌과 여왕벌을 가르는 것이 로열젤리라며. 아주 몸에 좋은 것이라고. 국산은 너무 비싸고 캐나다산과 호주산이 가격도 적당하고 좋다고.


며칠 전에 심장 재건술과 스탠트 시술을 받아 오늘 참석 못한 작년 동기회장 이야기도 나왔다. 손목에 있는 혈관으로 들어가서 스탠트 시술을 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란다.


통풍으로 5년 이상 고생한 친구는 최근에 봉침을 맞으며 좋아졌단다. 결국 자신이 봉침 놓는 것도 배워서 자기가 봉침 놔줄 수 있단다. 인터넷으로 살아 있는 꿀벌 한통을 사면 최소 한 달은 벌들이 살아 있단다. 봉침은 만병통치약이라며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한다.


나는 6개월 간 배드민턴 치며 살았고, 3월부터 양압기를 사용하는데 코골이뿐 아니라 숙면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방학에는 서귀포에 있을 거라며 동기들 오면 재워줄 수 있다고. 한라산을 오르든지 올레길 함께 걷자고 했다.


모두 건강과 관련된 얘기들뿐이다. 은퇴하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생존본능이다. 본능에 가장 충실하게 모두들 살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잔다. 동기회 회장은 자발적으로 돌아가면서 한다. 내년은 누구고 80세 때까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가장 마지막에 누가 동기회 회장을 할지 모두 궁금해했다. 마지막 동기회 회장이 남은 공금 다 갖기로 하자며 낄낄거렸다.


결론이 더 명확해졌다.

내 마지막 꿈이 더 선명해졌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들어가지 않고 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며 보내는 삶은 의미가 없다. 이미 죽은 것만 못하다. 어떻게 하면 요양원 근처에도 가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무엇을 준비해야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내게 닥친 문제가 점점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드민턴 6개월 중간 정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