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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9. 2022

중고차 입양


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채 안됐다. 양압기( https://brunch.co.kr/@jkyoon/407 ) 착용을 시작한 이후 보통 여섯 시간 깊이 자는데 오늘은 네 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국민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처럼 일찍 깼다. 소풍 가는 날은 어머니가 꼭 김밥을 새벽에 싸주셨다. 어머니가 도시락통에 김밥 담는 것을 보면서 모양이 나지 않는 양쪽 끝마디를 손으로 집어 먹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무엇이 나를 이렇게 새벽부터 흥분시킨 것일까?


오늘 오후 두 시에 중고차(주행거리 28만 km의 2005년형 투싼)를 인수하기로 했다. 직접 보지 않고 사진과 설명만 듣고 인수하기로 결정했으니 어떤 상태인지 무척 궁금하다. 궁금증이 나를 흥분시킨 것이다.


서귀포( https://brunch.co.kr/@jkyoon/412 ) 에 마련한 거처에 올여름부터 자주 그리고 제법 오래 있을 것 같은데 아들의 차를 공유하자고 하면 아들이 싫어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갈 때마다 차를 렌트하기는 비용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내가 사용할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2003년형 닷지 인트레피드( https://brunch.co.kr/@jkyoon/383 )를 제주도에 갖다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처의 기계식 주차장에 인트레피드를 넣을 수 없단다. 14mm가 길어서. 그렇다고 20년 동안 애지중지한 인트레피드를 노상 주차하고 싶지는 않다.


중고차 파는 온라인 플랫폼이 많다.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 마켓( https://brunch.co.kr/@jkyoon/65 )이다.


중고차 온라인 시장을 기웃거리며 몇 대를 찜하기도 했지만, 중고차는 종류도 다양하고 워낙 많아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레몬이 아닌 것을 선택하기는 아주 어렵다. 서귀포 갈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마음의 결정이 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결정을 방해한다.


지금 세상은 SNS 세상이다. SNS를 함 이용해볼까?


동기 여러분(선후배 여러분, 페친 여러분)! 혹시 폐차시켜야 하나 하고 고민하시는 아주 아주 중고차 주변에 없나요? 상품성은 거의 없어서 중고차로 팔기는 힘든 차! 그러나 굴러가는데는 별 문제가 없어 폐차하기는 아까운 차! 그런 차 어떤 차인지 아시죠? 제가 그런 차가 한 대 필요해서요. 제가 고민을 덜어드릴게요!


위와 같이 카카오 단체 채팅방 두 개(대학 동기, 카이스트 실험실 동문)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성공했다. 카이스트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매연저감장치 개발용으로 사용하다 업무용으로 직원들이 사용하던 차인데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거의 놀고 있는 법인 소유의 차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이 차를 뭐에 쓸라고?"

"제주도에 체류하면서 막차로 사용하려고."

"벌써 정년퇴직했냐?"

"아니 아직 한 일 년 남았는데, 아들이 서귀포에 집을 얻었어. 거기 내 방을 하나 마련했거든."

"앞 유리에 금이 갔고, 뒷 펜더에 좀 찌그러진 곳도 있지만, 아직은 잘 굴러가니까 이삼 년은 쓸만할 거야."

"완벽해! 내가 찾던 그런 차야! 아무 데나 주차해도 전혀 걱정이 안 되는 차를 찾고 있었거든. 폐차시키면 얼마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 내가 그 돈 주고 살 테니."

"알았어. 관리과 직원 시켜서 서류 챙겨 차랑 함께 갖다 주라 할게."


그렇게 막차가 생겼다. 성북구청에서 명의이전하며 차와 처음 대면했다. 푸른 하늘색이 마음에 든다. 오늘의 흥분이 드디어 좀 누그러졌다. 운전을 해보면서 차량 상태를 이것저것 점검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다음날 아침에 탁송회사에 차를 인계해야 그 다음날 제주공항에서 탁송회사로부터 차를 다시 인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소유한 사람의 신분이나 계급을 드러내는 제법 비싼 내구재이기에 사람들은 신중하게 자신의 자동차를 선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역 보험가입자의 보험료를 산정할 때 소득과 재산뿐 아니라 어떤 자동차를 갖고 있느냐를 정말 꼼꼼하게 따진다. 새 차일수록 비싼 차일수록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야 한다. 참고로 9년 이상된 승용차는 보험공단이 관심 갖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신분이나 계급은 소유한 자동차의 가치와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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