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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16. 2022

서귀포에 내 방이 생겼다.

비혼을 선언( https://brunch.co.kr/@jkyoon/313 ) 아들과 공동(5:5)으로 제주도에 거처를 마련했다.


아들의 꿈은 제주도에서 호구를 해결하며 사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바다낚시와 물질(프리다이빙)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만 한 곳이 없다 하였다. 작년에 퇴사( https://brunch.co.kr/@jkyoon/317 )하고 몇 달 제주도에서 혼자 지내더니 태평양을 마주한 서귀포 남쪽 바다가 더 좋다고 했다. 결국 서귀포 동홍동에 자리 잡았다. 아들은 년세 오륙백 정도의 오래된 주공아파트에서 살 집을 찾기에 내가 제안했다. 내가 반 낼 테니 좀 더 큰 새 집을 찾아보라고. 나는 아들이 거절할 줄 알았다. 집세 반을 냈다고 자기 집 드나들듯 하는 아버지와 자주 마주치는 것이 성가신 정도를 넘어 끔찍할 수 있기에... 서울에서 서귀포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한다 하여도 거의 다섯 시간 이상 소요된다. 이런 거리를 아버지인 내가 그렇게 자주 오지는 못하리란 생각에 아들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를 조건으로 아들은 검색과 탐색을 하더니, 동홍동 주공아파트 근처 신축 오피스텔을 찾았다. 주로 원룸인 오피스텔의 꼭대기 층에 베란다가 있는 펜트하우스가 있었다. 널찍한 집은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를 갖고 있다. 모두 남향인 방과 거실에서 멀리 바다가 보이고, 서귀포 앞바다의 세 섬 중에 섶섬과 문섬이 보인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부풀어 올라 보인다. 언덕 위에 지어진 9층에서 바다가 부풀어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섶섬과 문섬의 정상만큼이나 바다가 부풀어 올라 있다. 9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북쪽으로 큰 창이 나있다. 큰 창문을 한라산이 꽉 채우고 있다. 오늘은 화창하여 한라산 정상이 아주 가깝고 선명하게 보인다. 작년에 준공하고 아무도 살지 않던 새 집이 엄청 좋은 전망을 갖고 있다. 이 전망이 특히 내 맘에 쏙 들었다.


이삿짐 푸는 것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금요일 오후에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들은 전 날 혼자 살 던 오피스텔에서 이삿짐 부치고, 자동차도 탁송하고, 저녁 비행기로 내려와 공항 인근에서 잤단다. 이삿짐은 안양에서 부친 지 24시간도 안되어 서귀포에 도착했다. 따로 탁송된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서 제주까지 이렇게 빨리 화물이 옮겨지는 것이 신기하다. 정말 우리는 빠르고 바쁜 시대를 살고 있다. 공항에서 181번 좌석버스를 탔다.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하여 제주 시내를 빠르게 벗어나더니 성판악을 거쳐 섬을 가로질러 1시간 15분 만에 서귀포에 도착했다.


아들은 바로 옆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했다. 드디어 제주도민이 되었다. 아직 호구를 해결하지 못했으니 꿈을 다 이루진 못하고 반만 이룬 것이다. 일단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6년의 인생을 갈아 넣어 번 돈으로 살겠단다. 혼자 사는데 큰돈 들지 않는다며...


토요일에 커튼봉과 암막 커튼을 샀다. 아들이 사용할 안방에 커튼을 달았다. 역시 커튼을 혼자 달기는 힘들다. 부모의 도움이란 이런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 방에는 커튼이 필요 없다고 했다. 난 아침에 햇빛 들어오는 것이 좋으니까. 새로운 날이 하루 더 생기는 것 같아 난 아침 햇살이 좋다. 가운데 방은 아들의 컴퓨터 방이고 마지막이 내 방이다. 거실을 제외한 방마다 베란다가 있고 내 방 바로 앞에 또 하나의 화장실이 있다. 9층 베란다에서 서귀포 시내와 바다를 내려 보며 저녁노을 지는 시간에 담배를 물었다. 이런 공간, 이런 시간에 존재함을 기뻐해야 한다. 흥분해야 한다. 다음에는 와인도 한 잔 해야겠다. 딱 두 밤 자고, 한 일이라고는 커튼 다는 것 도와주고, 일요일 아침 비행기로 여섯 시간 걸려 귀경했다. 2박 3일의 짧은 서귀포 여행을 다녀왔다. 훌쩍 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아들 보러 자주 가련다. 너무 자주 와서 아들이 싫어하지는 않을까?


제주도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부모들은 본능적으로 걱정을 한다. 그리고 선의를 갖고 끔찍한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본인보다 더 하는 부모는 없다.  

바다가 부풀어 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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