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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26. 2021

아들이 퇴사한다.


아들은 자동차 디자이너였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자동차 회사 장학생에 선발되어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다. 디자인센터 외장팀에 배치받고 만 6년을 일했다. 외장이란 자동차 외부 즉 껍데기를 말한다.

최근에 다른 디자인센터의 책임이 자살했단다. 딸이 둘이나 있는데... 유서를 남기지 않아 자살한 이유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업무에 무척 힘들어했단다.

“자살한 책임은 회사를 그만둘 기력도 없었던 거지.”

아들도 업무가 힘들단다. 그러나 자기는 회사를 그만 둘 기력은 있단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에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차의 기본 스케치를 그려내면 디자인 품평을 해서 하나나 둘이 선택된단다. 선택된 스케치를 한 디자이너는 그때부터 망한 것이란다. 그 후속 일이 양산 때까지 쏟아져 나온단다. 떨어진 스케치를 한 디자이너는 다음 스케치 품평 때까지 놀 수 있단다. 소위 꿀 빤다고 아들은 표현했다. 이런 디자인센터에서 더 이상 일 못하겠단다. 다음 달에만 양산 품평 준비해야 하는 차가 네 대란다. 작년에 잘 팔린 모델의 후속차란다. 자기를 포함한 세 명의 디자이너에게 떨어져 있는 일이.

일하는 소수는 엄청 바빠 야근에 특근해도 품평 날짜 맞추기가 힘드는데 같은 팀 다수의 다른 디자이너들은 또 떨어질 스케치만 하고 있단다.

너도 다음에는 떨어질 스케치 하면 되겠네. 그리고 꿀 빨면 되겠네. 아들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임원인 실장은 바로 눈 앞의 성과 밖에는 관심이 없고, 팀장은 제대로 말도 못 한단다. 지금 진행되는 디자인은 냉각 성능을 못 맞추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을 자기가 외국인 센터장한테 직접 설명하려 해도 못하게 막는단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단다.

팀장 실장 되겠다고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단다.


너랑 친한 선배들은 뭐라 하냐 물었다. 친한 선배들은 다 다른 팀으로 이직했단다. 디자인에 더 이상 미련두지 않겠다고 디자인팀 아닌 다른 부서로 옮겼단다.

퇴사하고 뭐하려고?
일단 좀 쉬어야겠어.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뭐할지 정하지도 않고 사표 내는 법이 어딨어?
지금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시간이 있어야 뭐 할지라도 찾아보지. 평생 이 짓하고 있을 순 없잖아. 안 그래? 언젠가는 그만두어야지. 그 언젠가가 지금이라는 거지.

지금 맡은 일은 끝내야지.
그래 다음 달에만 품평할 차가 네 대인데 품평 끝나면 일단락되는 거니까. 그때까지만 다닐라고.

잘하는 걸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는 지나 봐야 알지. 지금 어떻게 알겠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나랑은 확실히 세대가 달라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이직할 직장이나 일거리도 확정하지 않고 퇴사부터 한다는 것에 나는 아니 내 세대 부모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해 소위 어른들의 충고는 선한 의도에서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이기 쉽다.

아무렴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본인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또 고민하는 사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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