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하고 우아하게 걷고 싶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노화 역시 피할 수 없다. 노화 현상은 신체의 모든 부위에서 진행된다. 모든 세포에 엔트로피( https://brunch.co.kr/@jkyoon/92 )가 쌓이는 것이다. 잘 자고 일어나면 아주 개운하다. 그러나 어제 아침 잘 자고 일어났을 때만큼은 아니다. 그만큼 더 노화한 것이다.
지금이 내 여생의 가장 젊은 순간이다.
매주 한 번씩 같이 골프 치는 친구의 걸음걸이가 오늘 유독 이상하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어깨가 엉거주춤하고 한 발 한발 내딛는 다리에 유난히 힘이 없어 보인다. 노인네 걸음걸이 같다 할까? 유난히 직설적인 내 성격이 뱉고 말았다.
“너 무슨 일 있냐? 걸음걸이가 왜 갑자기 폭싹 늙었냐?”
자기도 이상하단다. 한 눈이 잘 안 보이고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단다. 9홀을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에 눈을 감고 골프 카트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속이 메슥거려 토한 적도 있다며 이렇게 좀 쉬면 금세 괜찮아진단다.
‘야단이네. 이러다 곧 골프친구 하나 잃는 거 아닌가?’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온라인 강의라 교수들끼리 마주칠 일도 별로 없다. 학과 교수회의도 카톡방에서 다 이루어지고 도시락 싸들고 출근하는 교수들도 많다. 회식은 10월 3차 대유행 직전에 신임교수 환영회 딱 한 번 했다. 다른 과 내 또래 교수를 학교에서 우연히 봤는데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언제 저렇게 팍 늙었나 했다. 11월 말에 교직원 명예퇴직 신청받았는데 그 교수가 신청했단 소문을 들었다.
나이가 들면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걸음걸이를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나이 들면 경쾌함이나 우아함 같은 것이 없어지고 엉거주춤 걷는다. 이마트에서 장을 보며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혼자 장보는 한 어르신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폈다. 우선 보폭이 좁다. 그리고 두 발의 무릎이 아주 약간 굽어 있고 지면에서의 발의 높이가 아주 낮다. 마치 신발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어깨가 앞으로 구부정하고 머리도 어깨보다 앞으로 나와 있다. 다리의 움직임이 작은데도 상체의 움직임은 그보다 훨씬 크다.
정형외과 의사에게 좋은 걸음걸이를 배운 적 있다. 어깨를 가능한 뒤로 쭉 펴고 바지의 옆 재봉선에 어깨와 귀를 맞추면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힐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선은 전방 15도 위를 보게 된다. 내딛는 발의 무릎을 곧게 펴고 가능한 보폭을 키워 땅을 차듯이 걷는 것이 건강에 좋은 걸음걸이라고 했다.
거만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걷는 것을 추천했다.
건강한 걸음걸이가 우아하다. 슬리퍼나 운동화를 신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만들기 어렵다. 어떤 구두를 신냐에 따라 걸음걸이가 확 달라진다. 어깨를 펴고 산 너머 지는 노을을 응시하는 시선으로 경쾌하고 우아하게 걷고 싶다.
걸음걸이가 이상해진 친구가 걱정되어 구글링을 했다. 제법 복잡한 운동능력인 걸음걸이는 소뇌가 주관한다. 모든 운동능력을 관장하는 소뇌에 이상이 오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소뇌도 당연히 노화한다. 전형적인 어르신 걸음걸이가 증명한다. 노화를 멈출 순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 대부분은 꾸준한 운동만이 노화를 늦추지만 노화가 아니고 병이라면 신경과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