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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04. 2022

어르신도 자유를 갈망한다!



대학 교수로서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으니 여러 사람들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

"은퇴하고 뭐 하실 생각이세요?"

"놀 거예요."

"놀다니요. 사무실 같은 것 마련해서 좀 더 일하지 않고요?"

"대학교 내 방에서 28년이나 있었는데 무슨 사무실이요. 지금 내 방에 가득한 책, 폐기물 처리업자 불러서 한 30만 원 주고 다 내다 버릴 거예요. 그리고 전 떠날 거예요."

"어디로요?"

" 전생에 철새( https://brunch.co.kr/@jkyoon/315 )였나 봐요. 어디든 떠나면 좋더라고요. 해외도 좋고 국내도 좋아요. 새로운 곳에만 가면 정신이 들고 기운이 나거든요. 이제는 오래 비행기 타는 것이 힘드니까 바다가 좋은 필리핀이나 산이 좋은 라오스 같은 동남아를 자주 드나들  같아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들어가고 생을 마치는 것이 가장 간절한 꿈이에요.  딸은 오지에서 객사해서 자기 고생시키지 말고 이제는 집에 조용히 있으라지만..."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고지순한 이념이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세계일주 여행이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처럼 어마 무시하게 거창할 필요 없다. 늦잠 자고 싶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영화 보고 싶고, 게임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 대화하는 것 등 일상의 모든 것이 대상이고, 그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면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공부해야 하고, 일 해야 하기에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어쩌다 가장이 되었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때문에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했다. 은퇴를 앞두고 생각이 복잡하다. 엄청난 시간적 여유가 올 텐데 과연 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신체적 자유, 시간적 자유, 정신적 자유 말고, 으뜸은 역시 재정적 자유( https://brunch.co.kr/@jkyoon/378 )다. 우리가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우선 재정적 자유를 꿈꾼다. 재정적 자유만 확보하면 모든 자유를 확보한 것인 양. 재정적 자유를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은퇴 후에는 신선이나 귀족처럼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어 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문제는 자신이 재정적 자유를 확보했느냐다. 얼마가 있어야 재정적 자유를 갖게 되는 것일까?


어디서 읽었다. 월급 수백만 원을 받는다는 것은 월급만큼 예금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은행에 수십억 원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그러니 꾸준히 월급 받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은퇴하지 말고. 가장 확실한 노후대책은 은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조언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은퇴하기 전에는 생활비가 많이 들지만 은퇴하고 나면 만나는 사람도 확 줄고 자식들도 큰 기대 안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고.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노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돈은 수억 내지 수십억 원인데, 정작 돌아가시고 나서 은퇴 후 사용한 돈을 계산해 보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돈의 십 분의 일 정도를 쓰고 돌아가신다고. 그래서 돌아가시는 순간 좀 더 쓸 껄하면서 껄 껄 껄 하면서 가신다고.


나이 들면 노쇠하여 고장 난 신체가 자유를 제한한다. 94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80대 중반에 골프를 완전히 접으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가끔 아니 자주 꿈을 꾸셨다. 골프 치는 꿈을. 어제 사실은 꿈속에서 누구랑 어디서 골프 쳤다며 내게 누워서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내 골프채 어디 있냐고 갑자기 내게 물으신다. 아버지 골프채는 칠팔 년 전에 동생 주면서 알아서 처분하라 했건만.


은퇴한 어르신이 되면 시간에 쫓길 일은 없다. 시간적 자유는 확보된 것이다. 그 많은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이냐는 어르신의 자유다.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계속 노동할 거리를 찾는 것이 차라리 낫다. 노동하기 싫다면 은퇴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아니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면...


P.S. 올해부터 시작하여 6개월에 접어든 배드민턴이 이즈음 너무 재미있어 매일 세 시간의 자유는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은 무릎을 포함한 신체가 이 자유를 제한하게 될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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