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자유인
은퇴하고 이즈음 영동군 황간면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추풍령 언저리 산에 농막을 짓고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주로 면내 독채에 기거하며 거의 매일 산을 오가고 있다. '어설픈 산지기'란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dpcvbqGv0v8 )에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등록을 황간으로 옮겼으니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다. 올 가을에는 농막을 완성할 계획이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혼자 지내는 친구를 만나러 여러 번 황간을 방문했다. 1박 2일이나 2박 3일로 '황간펜션'(친구가 거주하는 독채를 나는 이렇게 부른다)을 방문하다 보니 근처 백화산과 황간 주변의 음식점도 익숙해졌다. 독거노인 친구는 아침은 빵을 주식으로 간단히 하고, 점심은 온갖 국수로 때우고, 저녁은 제대로 밥을 만들어 먹는단다. 이제는 요리나 부엌일도 제법 익숙하다. 그렇지만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단다. 웃으며 하는 말이 집에 여자 노예가 한 명 있으면 좋겠단다. 준비하고 치우고를 항상 해주는...
옛날 어릴 적에 집에는 우리 식구 말고 밥해주는 누나가 항상 있었다. 부엌 옆에 마련된 방에 기거하며 온갖 집안일을 해주던 어린 누나가 있었다. 1980년대 말까지도 있었다. 파출부란 단어가 생기기 전까지...
노예는 인류 역사와 거의 함께 있었다. 전쟁포로를 노예 삼는 것은 당연했다. 노예의 영어 단어 'slave'는 러시아의 슬라브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당시 문명화된 그리스 로마 시대에 미개한 슬라브족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어디서 읽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그리스 사회도 전체 인구의 상당수는 노예였단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강성했던 로마제국은 그 모든 길을 통하여 각지의 노예들을 끌어 모았다. 대항해 시대 이후에 서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로 만든 것은 최근의 역사다.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들을 감시하던 엄청나게 높은 탑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노예해방전쟁이라는 미국의 남북전쟁은 200년도 채 안된다.
지금은 노예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라는 무수한 광고들의 영상을 보면 노예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터키나 멕시코에도 미국과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노예나 가축에게는 주인이 있다. 주인 입장에서 노예나 가축은 자신의 재산이기에 먹이고 재운다. 난민들은 주인도 없고,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난민들의 인권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나?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돈의 노예다.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쏟는다. 교육의 가장 큰 목적도 노동을 잘 해내기 위한 것이다. 살면서 할 수밖에 없는 거의 모든 결정의 기준도 돈이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된다. 가성비니 가심비니 하는 것 모두가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과정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불리기 위해 시간과 머리를 쓰느라 인생을 흘리고, 돈이 모자란 사람은 돈을 마련하느라 인생을 보낸다.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들의 꿈은 재정적 자유다.
얼마가 있어야 재정적 자유인이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