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르신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다.
나랑 동갑인 동서가 동네 축구하다가 쓰러졌단다. 응급실로 실려 가서 관상 동맥에 스탠트 몇 개 심었단다. 심장 기능이 일부 손상되어 이제는 축구 같은 심한 운동은 하지 못한단다. 심부전으로 죽을 뻔했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막내 동서가 집에서 뇌경색이 와서 응급실로 실려 갔단다. 왼쪽 팔과 다리에 약간의 마비가 남아 한동안 열심히 재활치료를 해야 한단다. 두 사건 모두 지난달에 일어난 일이다.
건강수명은 병이나 부상 등의 '장애 기간'을 차감한 수명을 말한다. 실제로 건강하게 산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건강지표로, 평균수명보다 훨씬 중요하다.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한계를 뜻한다. 건강수명이 다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 남자의 평균 건강 수명이 74세란 것을 어디서 읽었다. 내 동서들은 지난달에 건강수명이 다할 뻔했다. 어쩌면 수명이 다할 뻔했다.
팔순 잔치하세요! 구순 잔치 말고.
칠순 잔치하세요! 팔순 잔치 말고.
아직 건강할 때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한다 생각하고 잔치를 하세요. 죽은 다음 친척이나 지인들이 내 영정에다가 절을 하고 통곡을 한들 내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아직 건강수명이 다하지 않아 쌩쌩하다면, 칠순 잔치, 팔순 잔치, 구순 잔치 다 하세요. 언제 갑자기 건강수명이 다할지 몰라요. 건강수명이 다하면 잔치하고 싶어도 못해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사람들 만나서 무엇을 할 수가 있나요.
칠순이건 팔순이건 이번이 마지막 잔치가 될지 몰라요. 장례식은 내 잔치가 아니잖아요. 어릴 때부터 함께 한 추억이 있는 친척들이랑 잔치 열고 마지막 작별인사 찡하게 하세요. 아주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거든요. 친구들이랑 생일잔치하세요. 이해 관계없는 친구들처럼 좋은 관계없어요. 잔치하며 밥 사고 술 사세요. 좀 더 쓰고 죽을 걸 하면서 후회하며 눈감지 말고, 그동안 함께 해서 정말 즐거웠다고 말하면서 한 잔 사세요.
혹시 칠순이나 팔순 잔치 열어 친척들이 돈 넣은 봉투 가져오면 즐겁게 받으세요. 내 조의금 미리 받아서 내가 쓴다 생각하면 아무 문제없어요! 내 장례식 때 조의금 들고 올 텐데요. (칠순 잔치 팔순 잔치에 부를 사람 다 불렀으면 정작 내 장례식 때는 직계 가족만 가족장으로 하라고 당부하세요.) 당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축의금 조의금 냈잖아요. 기쁘게 받으세요. 돈 받으면 좋잖아요! 자본주의에선 역시 돈이 최고예요! 그리고 빨리 쓰세요. 기쁜 일에 쓰세요. 한 번 더 밥 사도 좋고요. 명절 선물을 보내도 좋고요. 오고 가는 선물 속에 싹트는 우정,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사랑이란 말도 있지요? 없나요?
팔순이나 구순 말고 좀 더 일찍 하세요! 자식들 앞세워 칠순이나 팔순에 하세요! 귀가 점점 어두워지고 눈도 점점 침침해져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니까요! 눈과 귀가 아직 정정할 때 하세요. 그래야 받은 돈도 잘 세고 잘 쓰지요.
나이 들면 시간도 빨리 가지요. 엊그제가 육순이었는데 곧 칠순이잖아요. 칠순이 어제 같은데 내일이 팔순이고요.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은 기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랍니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한번 복기해 보세요. 그저께는 무엇을 했는지 한 번 복기해 보세요. 지난주는 어떻게 보냈는지 한 번 복기해 보세요. 쉽지 않을 거예요! 바로 직전 과거조차 아무 기억이 없으니 작년이나 오 년 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겠어요? 그러니 시간이 엄청 빨리 가는 거예요.
아직 정신 있고, 눈과 귀 거의 정상이고, 걸음걸이에 문제없을 때 잔치하세요. 기쁜 마음으로 밥 사고 술 사세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