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Aug 19. 2022

예쁜 여자 & 착한 여자

아버지는 내게 항상 말씀하셨다.

"얼굴 예쁜 여자랑 결혼할 생각하지 말고 마음씨 착한 여자랑 결혼해라."

그 당시 나는 이 말을 예쁘고 착한 여자는 없으니 예쁜 것 포기하고 착한 것에 집중해라로 해석했다. 그러나 젊은 수컷의 본능은 포기할 수 없다. 아버지는 항상 덧붙이시기를 "예쁜 것 오래 못 간다."라고 하셨다. 이즈음 유튜브 강연 보다가 "예쁜 것 오래 못가. 안 예쁜 것 아예 못가!"란 소리에 빵 터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나이인 환갑 즈음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던 아버지는 작년에 만 94세로 돌아가시고 나는 결혼한 지 37년이 넘었다. 그런 내게 만 33살 미혼인 아들이 있다. 나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실은 아무 말 못 하고 있다. 아들은 내게 비혼( https://brunch.co.kr/@jkyoon/313 )을 선언했기에...


예쁜 여자의 기준은 단순 명료하다. 또래의 많은 남자들이 예쁘다고 인정하면 예쁜 것이다. 아니면 또래의 많은 여자들이 재수 없게 생겼다고 하면 예쁜 것이란다.


물론 예쁘다는 형상학적인 기준은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 로마 시대, 르네상스 시대, 조선 시대 그리고 현대에도 아프리카에서 부족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선진국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들의 기준이 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유사한 기준을 갖고 산다.


착한 여자란 무엇일까? 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남자와 여자관계에서 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녀 관계를 떠나 착하다는 것은 이기적이 아니고 이타적이라는 것이다. 원래 동물은 이기적이다.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이타적으로 보인다. 기부를 한다거나 봉사를 한다는 것은 이타적인 대표적 행위이다. 왜 기부를 하고 봉사를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동물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우수한 종자임을 확인받고 싶어서? 짝짓기 상대가 좋아하니까? 잉여 자본(돈)과 잉여 시간(인생)을 남들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소유한 것이 잉여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설마 희생으로 인정받고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은 실제로는 모양을 바꾼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근원적 동기가 숨어 있는 이기적 동기라는 뜻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에 대한 행위의 실제 효과가 우리가 처음 생각한 것과는 반대라는 뜻이다.(p. 46) (어렵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기적 효과가 난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자기희생한 착한 동물들의 유전자가 오히려 번성한다고 한다. 현대의 무한경쟁 시대에도 과연 그런가?


행복은 '생존의 기회'로 정의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따뜻한 옷을 입거나 안락한 집을 확보하면 우리는  행복하다. 생존의 기회가 커진 것이다. 생존의 기회는 유전자 복제의 가능성을 높인다. 부부가 서로 협력하여 자식을 돌보는 것은 서로의 유전자를 번성시키기 위함이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에 행복해하는 것은 종의 계승 내지 발전을 위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본능이라 부른다.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타적 자기희생적 행위는 어미가 새끼에게 하는 것이다.(p.49)


여기서 어미란 암컷이다. 수컷은 애비다. 착하다는 것은 후손을 낳고 키우는 본능에 성실하고, 희생적이지 않은 수컷의 비위를 맞추어 수컷이 도망가지 않고, 함께 만든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역할을 하도록 붙잡아두려는 암컷이 갖고 있는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대부분의 암컷은 수컷보다 착하다. 그래서 (유아, 환자, 노인 등의) 돌봄이란 고된 노동에 암컷이 수컷보다 잘 적응한다. 암컷 중에서 특별히 더 착한 암컷이 존재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살아보기 전에 어떻게 미리 알아본 단 말인가?


아버지는 혹시 자신이 늙고 병들어 돌봄이 필요할 것을 대비하여 마음씨 착함을 강조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씨 착한 며느리의 돌봄 서비스를 기대한 것은 아닐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기적 효과를 보기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잔치하세요! 구순 잔치 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