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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16. 2023

목욕탕에서...

어르신 냄새를 어르신은 못 맡는다.


월요일 아침 서울에 있었다면 배드민턴 치러 갔을 텐데...

서귀포라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세 번째 방문이라 익숙한 곳이다. 좋은 곳은 세 번 이상 가야 한다.


가볍게 머리와 몸에 물을 뿌리고 건식사우나에 들어갔다. 보통 10분을 버틴다. 사우나의 모래시계(5분)를 뒤집으며 28년 전 출장 다니던 러시아의 목욕탕 바냐를 생각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발틱스카야 호텔은 발틱해를 마주 보고 서 있는 특급호텔이었다. 아무도 없는 핀란드식 사우나를 혼자 사용하면서, 사우나 안에서 하이네켄 맥주를 마셨다. 땀 내면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어 감히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데, 그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일요일에 러시아 과학자 얀칠린을 따라 동네 목욕탕 바냐를 갔었다. 러시아 목욕탕도 주말에는 매우 붐볐다. 습하고 뜨거운 사우나안에서 러시아 남자들과 알몸으로 앉아 있었다.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나며 피부가 근질거린다. 나무침상에 엎드려 누우란다. 그러더니 빗자루 같은 베로쟌(영어는 birch, 우리말은 자작나무) 묶음 두 개로 내 몸을 방망이질하듯이 두드려줬다. 근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을 넘어 심지어 아픈 데도 불구하고 표현 못할 뜨거운 환희를 느꼈다. 절정을 경험했다.


사우나 출구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열을 식히며 들고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거의 대부분 50대 장년부터 80대 노인들이다.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지 않는 젊은이는 아직 자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전라의 육체를 감상 중이다. 에덴동산을 보고 있는 중이다. 고령화된 에덴동산을... 남자들 뿐이다. 남탕에 들어왔으니... 여탕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다.


원래 인간의 육체는 아름답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남자인 내가 봐도 근사하고 멋지다. 미켈란젤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이다. 오래전 지금은 없어진 타워호텔 사우나에서 서울 원정 온 축구팀 선수들을 단체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은퇴한 유명한 축구선수의 아주 젊은 육체는 아름다웠다. 다비드상만큼이나 보기 좋은 근육과 갈색의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젊고 매끈한 육체는 아름답다.


월요일 아침 동네 목욕탕에서 아름다운 육체를 찾는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장년 이상의 노인들의 몸은 사실 볼품이 없다. 내장지방으로 가득 찬 배는 튀어나오고, 상체에 비해 매우 허약해 보이는 하체들만 보인다. 심지어 하지정맥류가 도드라져 보이는 다리도 있다. 쭈글쭈글하고 축 처진 엉덩이와 위태롭게 붙어 있는 빈약한 다리가 대부분이다.


삼사십 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 중에 키는 좀 작지만 근육이 가득 찬 가슴을 갖고 있는 30대가 보인다. 꾸준히 헬스장에서 만들어야 가능한 가슴을 갖고 있다. 월요일 오전에 저런 가슴 근육을 갖고 목욕탕을 찾은 젊은이는 누구일까 궁금하다. 아마도 직업이 소방관이나 경찰관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어젯밤 야간 근무를 서고 아침에 퇴근한... 유일한 근육질이다.


앉아서 양치질을 하고 있는 노인이 보인다. 오른손은 열심히 양치질을 하고 있고 왼손은 무엇인가를 들고 있다. 양치질하던 칫솔로 들고 있는 무엇인가도 솔질을 한다. 틀니구나... 틀니를 닦던 칫솔로 다시 양치질을 한다. 입과 손을 왔다 갔다 하며... 얼마나 시원할까?


허벅지에 용머리라기보다는 사자머리 같은 문신을 한 사람이 눈앞을 지나간다. 한쪽 다리에만 선명한 저 문신을 왜 했을까 궁금해진다. 사자처럼 용감하고 짧게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문신하지 않았을까? 요새는 문신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주 보인다. 지우기도 힘든 자신의 문신을 매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까? '하기 잘했다'와 '괜히 했다' 중에...


때 미는 아저씨가 바쁘다. 월요일 오전이라 한가할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사람들이 때 밀리는 침상에서 일어나고 눕는 것이 보인다. 때 밀릴까 말까 망설이며 작은 때수건을 집에서 넣고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면서까지 밀리고 싶지는 않다. 수영금지라고 쓰여있는 냉탕에서 수영하듯 허우적거리는 어르신, 46도 표시가 선명한 열탕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아 있는 어르신, 폭포 같은 물줄기를 맞으며 수압 마사지를 받고 있는 어르신...


어르신에게 목욕은 좋은 것이다. 발냄새, 입냄새뿐 아니라 노인이 되면 몸에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결국은 땀냄새인데 노인들의 땀 성분이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어디서 읽었다. 그렇게 육체가 노화되며 할아버지 할머니 냄새를 풍긴다. 매일 발가락 사이까지 깨끗이 씻어도, 자고 나면 머리에서 냄새가 난다. 아침에 깨자마자 매일 목욕탕에서 씻는 습관을 갖는 것이 어떨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냄새나는 육체를 치워달라기 미안하잖아!!

서귀포 동홍동 솔오름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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