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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16. 2023

어제 죽은 자가 갈망하던 내일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어제 평소보다 일찍 자기는 했지만 너무 일찍이다.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런데 양압기(  https://brunch.co.kr/@jkyoon/407 )를 사용한 이후로 6시간 정도 자고 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제는 열 시에 누웠으니 새벽에 깨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은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저린 통증을 느끼면서 깼다. 팔이 저려서 잠이 깨는 것인지 잠이 깨면서 의식이 돌아오며 통증을 느끼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팔꿈치 터널 증후군을 몇 년 전부터 앓고 있다. 신경이 지나는 통로가 좁아지면서(노화로 인해) 신경을 눌러 생기는 병이다. 팔꿈치가 오랫동안 접혀 있지 않다면 별 증상이 없기에, 그리고 마땅한 치료법도 없기에 내버려 두고 있는 중이다.


이불속에서 잠을 더 청하느니 일어나 책을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남동향이다. 겨울에는 해가 7시 반경에 뜬다. 식탁에 앉아 사과를 깎아 먹다 보면 거실 창을 통하여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주홍빛에 가까운 하늘이 점점 주황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본다. 점점 붉은빛은 사라지고 푸른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름이 아주 두껍게 하늘을 덮고 있지 않다면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


달걀노른자 같은 태양보다 태양의 등장을 알리는 주홍빛의 새벽 여명이 나는 더 좋다. 오늘은 어떤 일출 광경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 상태를 내가 더 즐기기 때문이다. 여행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짤 때가 더 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시간이 좋다.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다는 것이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오늘 어제 죽은 자는 무엇이 하고 싶었을까를 궁금해하며 나는 오늘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일출보기를 좋아한다.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나 캄캄한 밤 산 정상을 힘들게 올라 일출을 본다. 동해 바닷가에서 수평선 위로 뜨는 태양을 본다. 신년 초하룻날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을 비롯한 동해 바닷가로 몰려간다. 그러나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감격스러운 일출은 어디서나 매일 볼 수 있다.


모로코 마라케시 숙소 루프탑에서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하라 사막에서 솟아오르던 일출을 보던 새벽이 생각난다. 그때 보았던 태양이나 지금 보는 태양이나 같은 태양이다. 장소에 따라 계절에 따라 구름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일출이지만 내용은 같다.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다. 자전주기인 24시간마다 어디서나 언제나 일출이 일어난다.


마라케시의 일출을 보면서 후배의 부고를 받았다. 부고는 그렇게 갑자기 날아온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몇 달 전 갑자기 자서전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가 해주어야 하는 많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얘기할 자식이 없다. 이미 다 커버렸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없는 것이 축복'이란 말이 있다.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식은 아버지 소유다. 성장에 꼭 필요한 돌봄은 오로지 어미에게 받는 것이고, 아비는 일종의 넘사벽이다. 설득이 안 되는 고집불통인데,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있다. 그리고 자식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줄 권력도 있다. 그래서 없는 것이 축복이란 얘기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은 진정한 자유인은 일출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2017. 1.6. 마라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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