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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6. 2023

곧 경로우대!

"왜 머리 염색을 안 하세요?"

"머리 염색을 왜 하는데요?"

"젊어 보이잖아요."

"저는 젊어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데요."

"누구나 젊어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군요. 처음 알았어요."



상황 1.(2022년 8월 어느 날)

제주도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는 가벼운 산행(어승생악 정상 해발 1169m를 주차장에서 40분 이면 오른다.)을 위해 어리목 주차장을 들어가는 중이다. 창문을 내리고 주차장 입구 부스의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주차요금이 얼마예요?"

"혹시 어르신이시면 주차료가 감면됩니다."

"아직 아니에요. 내년에 다시 와서 꼭 감면받을게요."


상황 2.(2022년 10월 어느 날)

서귀포 서복전시관 입구에 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더니 매표창구에 사람이 있다. 입장료가 500원이다. 혹시 주머니에 500원짜리 동전이 없을까 하고 뒤지면서,

"이즈음 세상에 500원 입장료가 있다니 신기하네요."

"혹시 어르신이시면 무료입니다."

"안타깝게 아직 아니네요. 오늘은 500원 내고, 내년 가을에는 꼭 다시 와서 무료입장하렵니다."

서복은 진나라 시황제의 명을 받아 선단을 이끌고 불로장생초를 구하기 위해 동아시아 일대를 휘젓고 다닌 인물이다. 서귀포가 서복이 본국으로 귀환한 포구란 것을 알았다.


상황 3.(2023년 1월 6일 금요일)

오늘 같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운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운동 대신에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사우나 하려고 아침 먹고 바로 집을 나섰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서귀포 동홍동 사우나에 왔다. 1층 매표창구에서 무심코 신용카드만을 건넸다. 나보다 확실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게 묻는다.

"경로우대예요?"

"에? 아니 아직 아니에요."

2023년 10월이 되어야 만 65세가 된다. 창구 왼쪽에 붙어 있는 요금표로 눈이 갔다. 일반 7000원, 경로우대 6000원이란 것이 보인다. 그리고 경로우대 밑에 괄호 열고 '75세 이상' 괄호 닫고...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별로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대부분 흰머리카락이지만 아줌마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했다.


젊어 보이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머리털 염색을 한다. 젊은 이들 중에는 검은 머리털을 탈색하여 황금색이나 흰색을 만들기도 하지만... 얼굴은 분명 육칠십 대가 틀림없는데 머리털은 아주 까맣게 염색하여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화장을 하거나 가발을 쓰는 것과 머리털을 염색하는 것은 같은 심리에서 같은 효과를 노리는 것 아닐까 싶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효과말이다.


80대에 접어들어 건강수명이 거의 끝나가던 아버지는 가끔 내게 말씀하셨다. 1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고... 10년을 젊어 보이고 싶다는 것이 아니고, 10년 전이라면 육신이 제법 팔팔하여,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싶다는 표현으로 나는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같은 후회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슬프게도 아버지는 여러 면에서 내게 반면교사였다.


젊어 보이지 않아도 젊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10년 전이나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미래가 불확실한 10대나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충분히 살았다. 열심히 살았다. 여한 없이 살았다.

지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오늘을 살련다.

서귀포에서 보는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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