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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29. 2023

특권(Privilege)

Dilemma in economy and business

공항의 게이트 앞에서 탑승 직전 항상 마주하는 광경이다.


어린이를 동반한 승객이나 휠체어 탑승객을 비행기에 먼저 태우면서 비즈니스석 승객도 함께 먼저 태운다.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다는 것인지, 그냥 일종의 특권이라 생각하고 누리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반석은 비행기 꼬리 쪽부터 구역을 나눠 뒤에서부터 채우면서 제일 앞의 비즈니스석을 왜 먼저 태우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일반석 승객들이 부산함 속에서 다 착석하고 난 뒤 몇 명 안 되는 비즈니스석 승객을 태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체크인 카운터에서도 비즈니스나 일등석의 카운터는 항상 여유 있다.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출국심사나 입국심사에서 특혜(빠른 심사)를 주는 공항도 있고, 보안검색대도 승무원과 외교관을 위한 신속한 라인에 비즈니스석을 산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공항도 있다. 공항에서의 대기시간 동안 비즈니스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가벼운 음식과 술 및 음료가 무제한 공급된다. 샤워와 수면이 가능한 라운지도 있다.


비행기에 먼저 탔다고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부친 짐이 수화물 벨트에 먼저 올라왔다고 해봐야 5분 상관인데 항공사와 공항은 비즈니스석 승객을 위한 특권을 알게 모르게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비행기의 좌석은 일반석(economy), 비즈니스석(business) 그리고 일등석(first)으로 구분된다. 일등석은 장거리 노선에만 있고 중단거리 노선에는 없다. 대부분의 좌석은 일반석이고, 좀 더 넓고, 좀 더 편한 비즈니스석이 있다. 아마도 업무 출장 가는 사람들이 회사 비용으로 타기에 비즈니스란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한때는 비즈니스맨이란 단어 자체가 아주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중장거리 노선의 비즈니스석은 이즈음 완전히 누울 수 있다.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을 타 본 사람은 완전히 누워서 이동하는 특권의 안락함을 잊지 못한다. 기내식이 특별하고 아무리 고급져도 가장 큰 이점은 누워 잘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기 기내의 압력은 해발 2800미터 수준이고 기체의 부식을 억제하기 위해 기내 습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이렇게 편치 않은 환경에서 일반석에 앉아 장시간을 간다는 것은 고통이다. '이코노미석 증후군'이란 병명이 있을 정도니...


항공사는 비즈니스석을 일반석의 거의 네 배 이상을 받고 판다. 차지하는 공간을 보면 사실 이해가 간다. 이렇게 비싼 좌석을 자신이 노동해서 번 생돈으로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항공사는 비즈니스석을 계속 늘리고 있고, 미국노선을 비롯한 장거리 노선은 일반석보다 비즈니스석이 먼저 매진되기도 한다.


비즈니스석을 타고 여행을 가고 싶지만, 항공료로 네 배 이상의 돈을 쓰기는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이 딜레마다. 비즈니스석은 너무 비싸고 일반석은 너무 고통스럽다. 가족이나 친척이 미국이나 유럽에 살고 있다고 하자. 자주 보러 가고 싶은데, 미국이나 유럽을 일반석을 타고 가는 것은 엄두가 안 난다. 비즈니스석 항공편을 내 생돈 주고 사기도 엄두가 안 나긴 마찬가지다.


안 가는 거다. 못 가는 거다. 안 보는 거다. 못 보는 거다.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장거리 항공편을 연이어 갈아타고 가야 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안 간다. 못 간다. 돈은 아깝고 몸은 안 따라주니… 결국 어르신의 행동반경은 크게 줄어들고 집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진다. 그러면서 여행도 젊을 때 해야 한다는 옛말이 맞다고 이제야 맞장구친다.


특권을 한 번 맛보면,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한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대통령이 특권 때문에 꼴불견인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특권을 계속 누리려고 그렇게 자리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은 돈으로 사는 특권이다. 특권을 누리려고 그렇게 열심히 돈돈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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