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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27. 2023

객사의 조건

내 추억은 내가 지워야  깔끔하게 지울 수 있다.

용인의 아파트 12층 옥상에서 80대 부부가 함께 점프했단다. 내막을 몰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런 공포와 고통을 피하려면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만이 해결책 아닐까?


건강수명 이후에 요양원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 길다. 무려 10년을 넘기는 것도 다반사다. 이 연옥 같은 시간을 피하고 싶다. 요양원 입소 직전 돌연사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돌연사니까...


어느 어르신의 남은 생의 목표가 '요양원 입소 전의 객사'라고 한다.

https://brunch.co.kr/@jkyoon/551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객사는 방랑 중에 일어나야 한다. 전쟁터나 교도소에서도 객사하지만...

당나라 시인인 이백과 두보 모두 방랑생활 중에 객사했다고 한다. 방랑생활이란 것이 지금의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주하지 못하는 삶이다. 정주하면 하루가 습관으로 이루어진 일상일 뿐이다. 정주하는 곳이 바로 집이다. 안전이 보장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이다. 애매모호함과 불안정한 방랑생활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방랑을 떠나야 객사할 수 있다.


1. 혼자 여행(방랑)을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혼자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방랑은 혼자 할 수밖에 없다. 방랑의 동반자를 찾으려 하지 말고 방랑 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고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정주하는 것이 기본이고, 정주하고자 한 사람은 절대 방랑하지 않는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주한 사람은 그림 같은 집을 두고 결코 떠날 수 없다.


2. 방랑생활이 편안해야 한다.

방랑이 유랑이 되어야 한다. 부랑이 아니고. 생활이 불편하면 집을 그리워한다. 지금 같은 초고속의 시대에는 스마트폰앱으로 비행기표 사고 바로 돌아갈 수 있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살아 있다는 동물의 증거 아닌가? 잘 먹고(당연히 소화가 잘되어야 잘 먹겠지요), 잘 자고(불면증과 같은 수면 장애가 없어야겠지요), 잘 배설하고(변비나 전립선 비대가 심하지 않아야겠지요)하는 것이 행복의 기본조건이라고 한다. 방랑 중에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해야 한다. 그래야 방랑생활에 적응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다.


3. 혼자 밥 세끼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방랑생활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끼를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 추풍령 산자락 농막에서 독거하는 친구는 하루 세끼를 손수 다 해결한다. 산속이니 사 먹을 수도 없다. 아침은 빵으로 점심은 국수로 저녁에만 밥을 먹는다. 세끼를 만들어 먹고 치우고 하다 보면 하루 해가 다 진다.

코카서스 산속에서 만난 배낭 멘 커플은 거의 한 달 동안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식사를 하지 않고 대용식으로 영양만을 공급하며 버텼다고 한다. 이제 한 달 만에  'Real Food'를 먹으러 마을로 내려간다고 했다.

라면이나 떡볶이 정도는 할 줄 알지만 만들어 먹고 치우는 번거로움이 싫다. 그래서 음식점이 있다면 무조건 매식한다. 자본주의에선 돈으로 처리 못할 것이 거의 없다. 필리핀 앙헬레스의 프렌드쉽거리나 베트남 호찌민 푸미홍 지역은 한국보다 한국음식점이 더 많다. 하루에 한 끼는 찰진 밥을 먹고 싶다.


4. 쉽게 잠들어야 한다.

잠자리가 바뀌었다고 자지 못한다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다. 맑은 머리를 유지할 수 없다. 정신이 온전해야 제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이즈음은 양압기만 코에 갖다 대면 곧 잠든다. 심호흡을 하면서 자는 기분이다. 에어컨, 따뜻한 샤워, 깨끗한 침대시트만 있으면 호텔이건 여럿이 함께 자는 게스트하우스건 가리지 않는다.

https://brunch.co.kr/@jkyoon/495


5. 가진 것이 없어야 한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면 쉽게 떠나지 못한다. 소유한 것이 너무 아까워 눈감지 못할지도 모른다. 추억이 서린 물건이라도 다 처분해야 한다. 내 추억은 내가 지워야 깔끔하게 지울 수 있다.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떠나야 한다. 여행 떠나는 사람의 배낭 무게는 전생의 업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닌다고. 만일 당신이 객사했는데 당신의 소유물들을 치워야 하거나 처분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짜증을 낼 거다. '지가 싼 X을 누구더러 치우라 시키냐고!'


6. 조급함이 없어야 한다.

한국관광객을 상대해 본 많은 현지인들이 '빨리빨리'란 한국말을 알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모든 것을 서둘렀으면 한국사람을 '빨리빨리'로 인식할까? '빨리빨리'는 빨리빨리 죽고 싶다는 것이 아니고,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경험하기 위해 지금의 상황을 빨리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욕심이다. 몇 개국, 몇 개 도시, 며칠을 여행했느냐로 여행경험을 견주는 한국 젊은 사람들은 결코 방랑을 할 수 없다. 방랑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은것이다. 미래가 창창한 것이다. 방랑을 빨리빨리 할 수 없다. 느긋하게 아주 천천히 해야 방랑이다.


아무거나 즐겁게 잘 먹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 먹는 것에 까다로움이 없어야 한다.

이상하죠? 객사를 꿈꾸면서 생존을 걱정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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