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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13. 2023

자다가 다리에 쥐 난 적 없나요?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



10여 년 전이었다. 한밤중에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잠이 깼다. 신음을 하며 뭉친 종아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적 처음이다. 한참을 주무르고 나니 다시 잠들만했다.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심하게 한 것도 아닌데... 그 이후로도 가끔 자다가 종아리와 발에 쥐가 났다. 누가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다리에 쥐가 날 수 있다 하여 마그네슘 영양제도 먹어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최근에야 병명을 알았다. '하지정맥류'다. 다리의 정맥에 역류를 방지하는 판막이 있는데 노화에 의해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판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심장으로 피를 원활하게 되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아리 근육을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우리 몸의 40% 이상의 피를 심장으로 되돌리는 근육이라...


하지정맥류라고 하면 중년 여성들의 다리에 혈관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르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어르신들에게 흔한 현상이란 것을 최근에 알았다. 70대 이상의 남자는 40% 이상이 하지정맥류를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단다. 나처럼 심하지 않다면, 잘 때 다리를 심장보다 15센티 이상 올리고 자면 중력의 도움으로 심장으로 돌아오는 정맥의 혈류를 원활하게 해 준단다. 그리고 낮에는 항상 종아리 압박스타킹을 착용하면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니 종아리의 정맥이 예전보다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다.


3년 전이었다. 밤에 대전까지 운전을 하고 혼자 모텔에 누웠는데 허리 아래가 갑자기 아파온다. 아주 기분 나쁜 다리 통증이 몰려왔다. 소위 신경통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했다. 평생 처음 신경통을 경험했다. 너무 아파 밤새 한 숨도 못 잤다. 대전이라 아는 병원도 없고, 아침에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 때문에 대전까지 온 거라 편의점에서 일단 진통제를 사 먹었다. 참을만했다. 간신히 회의 마치고 저녁에 귀경했다. 다음 날 아침, 신경외과 의사인 친구 병원에 갔다. 몇 달 전 건강검진 시에 찍은 척추 MRI CD를 혹시나 하며 갖고 갔다. 친구가 MRI 사진을 보더니 '추간공협착증'이란다. 신경이 지나는 통로의 척추뼈가 자라 다리로 가는 신경을 눌러 그렇게 아팠던 것이란다. 이 또한 노화에 의한 흔한 병이라 일단 열심히 걷는 운동을 하란다. 그리고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준다.


2009년 10월 24일이었다. 10월 24일이 한때는 공휴일인 UN의 날이라 확실히 기억한다. 내 나이 만 51세.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젊고(?) 왕성한 시절이었다. 교수로서 연구도, 강의도, 학교 보직도 참 열심히 할 때였다. 매달 3번째 토요일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선후배들이 20여 명 남짓 모이는 조촐한 골프 모임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골프도 잘 쳤다. 라운딩 끝나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갔는데 맥박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빨라진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땀이 식을 줄 모른다. 간단한 식사를 곁들여 맥주를 마시는데 심장이 요동침을 느끼니 좋아하는 맥주를 마실수가 없다. 운전대를 잡고 골프장이 인천이라 경인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분명 몸에 문제가 있다. 토요일 늦은 오후니 종합병원 응급실을 생각했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곳에 이대 목동병원이 있다. 응급실로 운전하고 가서 뭐라고 내 증상을 얘기하지? 운전을 하며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40분 정도 운전을 하니 점점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증상이 없어졌으니 응급실 가서 뭐라고 설명을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그냥 집으로 오고 말았다. 일요일을 지나고, 월요일 오전에 근처 내과를 찾았다. 혈압을 측정하니 상단이 180이다. 그날부터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 혈압약 덕분에 혈압은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50대 중반에 바닥이 딱딱한 리갈 구두를 즐겨 신다가 족저근막염 진단을 받았다. 지방패드 위축증일 수도 있다. 지방패드위축증은 발바닥의 지방패드가 노화로 인해 빠져나가 발바닥이 아픈 것이다. 이후로 바닥이 푹신한 신발만 신다 보니 잊고 있었는데,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하면서 발 뒤꿈치 뒤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발 뒤꿈치 아킬레스건의 부착부가 아픈 것을 아킬레스건염이라고 한단다. 아침에 눈뜨고 첫 발을 떼기가 겁난다. 너무 아파서...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염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배드민턴을 치기 전, 준비운동으로 족저근막과 아킬레스건을 많이 풀어주면 배드민턴 치는 동안에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자고 나면 걸을 수가 없어 침대에서 마사지를 한동안 해야 한다. 예전부터 내가 발마사지를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삼사 년 전이었다. 난 가슴이나 배에 양손을 얹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왼손가락이 저려오면서 잠이 깼다. 손이 저린 것은 목디스크의 증상이기도 한데,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만 저린 것은 팔꿈치터널증후군이라고 한다. 신경이 어깨, 팔꿈치, 손목을 거쳐 손가락 끝까지 연결되는데 팔꿈치를 지나는 신경이 눌려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역시 신경이 지나는 통로의 뼈가 자라 신경다발을 누르는 것이다. 양손을 바닥에 쭉 펴고 자면 문제가 없다. 이 또한 노화의 증상이다.


고혈압, 추간공협착증,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염, 지방패드위축증, 팔꿈치터널증후군 등...  


내 신체는 망가질 수 없다는 환상을 박탈당했다.

나라고 무슨 재주로 노화를 피할 수가 있겠는가?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란 책은 42세 한창 일할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마이클 킨슬리'란 미국의 정치 칼럼니스트가 쓴 책이다.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20여 년 동안 남들보다 일찍 늙어가며 깨달은 것을 정리한 책이다. '초보 노인을 위한 지적이고도 유쾌한 가이드'란 부제가 붙어 있다.


아직 치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매일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그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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