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은 자신의 육체가 노화되고 있음은 거의 매일 느낀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거나,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 확실히 느낀다. 그렇지만 자신의 두뇌가 노화되고 있음은 거의 잊고 산다.
관절과 근육처럼 두뇌도 노화되고 있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지 않았어도 두뇌 역시 매일 노화된다. 신체는 만 20살부터 노화되기 시작한다는데, 두뇌는 그보다 늦게 노화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젊은(40대까지) 시절에는 학생들 출석부 몇 번 부르면 수강생들을 거의 기억했다. 그러나 만 50세부터는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이번 학기에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인지 아닌지는 알아보지만 이름까지 기억해 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3년을 지나면서 첫 해의 전면 온라인 수업과 그 이후의 대면수업 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하여 아예 학생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게 되었다. 핑계일 수 있다. 사실은 뇌가 노화되어 얼굴의 차이를 구별해 내는 능력이 쇠퇴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래드 피트가 앓고 있다는 병의 이름을 아시나요?
'안면실인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안면실인증이란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애로, 장소인식, 자동차인식, 얼굴 감정 표정 인식과 같은 장애가 온다고 하네요. 심한 경우에는 배우자와 자녀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네요. 이 병은 대부분 두부 외상과 뇌졸중, 퇴행성 변화 등 뇌손상에 의해 일어나게 되며, 선천적인 경우도 있고, 유전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나 증손주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옆에서 보신 적 없나요? 브래드 피트는 사람 얼굴의 특징을 구별하고 기억해 내는 뇌의 어느 부분이 남들보다 빨리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저 역시 50대 때부터 이 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똘똘하던 재거니가...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하던 7자리 전화번호는 핸드폰이 나오면서부터 기억하기 어려워지더니 어느새 내 번호 이외에는 아예 기억할 필요조차 없어졌지요. 그렇지만 집이나 사무실의 도어록 앞에서 어느 날 갑자기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해 본 적 없으신가요?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못 들어간 적은 없지만 '뭐지?' 했던 경험은 있습니다. 친척 집이나 초대받은 집의 아파트 동호수도 젊은 시절에는 한 번만 들어도 기억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기억하고 있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자주 방문하는 딸네 집 동호수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답니다.
뇌에는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 따로 있는데, 뇌가 노화하면 단기 기억 저장소부터 문제가 생긴다고 하지요. 장기 기억 장소까지 문제가 생기면 치매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옛날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이유가 장기 기억만이 아주 또렷하기 때문 아닐까요? 단기 기억능력은 이미 많이 망가졌지만...
결국은 언젠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동호수조차 기억해내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다 경찰의 도움으로 순찰차 타고 집(또는 요양원)에 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재거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