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rd는 strange, odd, unusual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조지프 헨릭이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란 새로운 의미를 책'WEIRD'를 통하여 만들어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제법 짧지 않은 시간의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 절대 피해야 하는 주제가 있다. 하나는 정치고, 다른 하나는 종교다. 정치는 우리가 사는 문제와 관련이 깊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극단에 자리한 사람이 전체 성인의 2/3라 어느 쪽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정치보다 더 피해야 할 주제가 종교다. 종교를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을 만큼 심각한 사람이 제법 많기 때문에 종교가 없거나 버린(?) 사람이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 힘들다. 많은 종교가 전도, 선교와 포교를 의무로 삼고 있어 종교가 없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전도나 포교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종교를 논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 호모 사피엔스는 종교에 아니 신에 의지했다. 생존하는 것이 그리고 살아 낸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존재인 신, 신의 전지전능한 파워, 사후세계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부담이 크면서도 그만큼 그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의지할 것이 없다면 너무 힘들어 미쳐 죽을 지경이다.
아직도 사이비 종교가 이곳저곳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허약한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세계로 파고들어 둥지를 튼다. 그만큼 마음이 약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후가 불안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사후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후의 안전과 행복을 미리 보장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많은 인구집단에서 여성의 종교 신앙이 더 강한 것은 남성보다 우월한 감정이입 역량 때문이다.
전쟁과 학살의 기록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의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았고,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분명 평화가 시작된 지 제법 오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다운 전쟁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뿐인데 종전한 지 벌써 한 세대가 넘어가 버렸다. 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쟁에 참전 중이거나 전쟁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줄었다. 서유럽과 미국 및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일본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처럼 소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먹고사는 생존의 위협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국가들에서 아직도 종교와 신이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 신기하다.
문화적 관성(inertia)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라나? 움직이는 물체가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관성이다. 정지하고 있는 물체가 계속 정지하려고 하는 것 역시 관성이다. 모든 물체가 관성이 있어 변화에 저항하듯이 호모 사피엔스도 변화를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관성의 움직임 또는 에너지는 어디나 존재하는 마찰저항으로 인하여 결국은 열로 소멸된다. 관성은 현실세계에서 결국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아주 천천히...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 100년 정도 지금의 평화가 유지된다면 신은 호모 사피엔스의 의식에서 사라져 완전히 역사 속으로 들어갈지 모르겠다.
유럽과 미국 같은 기독교 사회가 세계질서를 좌우하며 잘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 인도 및 이슬람 국가들이 아니고.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유럽의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배웠다. 기독교 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하여 종교만이 득세한 시대라고 말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가족결혼강령'을 강제했다. 가족결혼강령은 계속 변화했지만 핵심은 일부일처제와 사촌 간의 결혼 금지다. 이 강령이 전통적인 친족기반사회를 붕괴시켰다. 심지어 의식을 개조했다. 개인주의 또는 자기 중심화를 통하여 계약을 통한 상업과 수도원, 대학 및 길드를 통하여 모든 분야의 진보를 이끌어냈다. 친족 아닌 사람들과 교류하며 혁신을 이뤘다는 것이 조지프 헨릭(위어드)의 설명이다.
근친혼 금지와 일부일처혼이 지금의 민주적이고 산업화된 부유한 위어드 사회의 바탕이란 것이다. 동물의 본능을 갖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를 기독교를 통하여 교화하고, 신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한 개신교가 문맹을 퇴치(누구나 성경을 읽어야 하니까) 한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가족결혼강령에 의해 친족기반사회의 속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정의나 도덕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친구가 난폭운전이나 음주운전을 했다. 당신은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했다. 사고를 내지 않았지만 경찰의 검문을 받아 경찰이 당신에게 친구가 난폭운전이나 음주운전을 했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1. 친구를 위하여 서슴없이 거짓말을 한다.
2. 거짓말은 할 수 없어 묵비권을 행사한다.
3. 친구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인정한다.
당신의 선택은? 친구가 아니고 형이나 동생이라면...
친구를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당신의 의식이 아직 친족기반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잘못을 증언하는 것은 당신의 의식이 위어드 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