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l 16. 2023

강의 끝.

학기가 끝났다. 마지막 강의였다.


대학교수는 자신의 만 65세 생일이 포함된 학기가 끝나면서 정년퇴직을 한다. 내 생일이 10월이라 오는 가을학기가 마지막 학기인데 강의가 없다. 내가 안 하겠다고 했다.


대기업 고위임원은 현역에서 물러나면 고문이란 타이틀을 부여받고, 일정기간 동안 급여, 사무실, 자동차를 제공받는다. 공기업에서는 임원이 아닌 직원의 정년퇴직 6개월이나 1년 전에 업무에선 배제된 채, 퇴직 이후를 설계하고 준비하라고 자유로운 시간을 준다. 이와 유사한 제도가 대학에도 있다. 대학마다 다르지만 마지막 일 년은 책임 강의시간을 반으로 줄여준다. 난 1학기에 이 일 년 치 책임강의시간을 대 채웠다. 2학기에 강의하면 초과강의수당을 받는다. 초과강의 대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퇴직하면 나만의 시간이 넘쳐날 테지만...


학교마다 다른 규정을 갖고 있지만 20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하면 보통 명예교수가 된다. 명예회장, 명예시민, 명예회원처럼 책임과 의무가 없는(따라서 대우도 없다) 타이틀만 교수인 것이다. 물론 징계를 받은 적 있거나, 특별한 사고를 치면 명예교수가 될 수 없다. 명예교수는 보수도 없고, 개인연구실도 없으며, 당연히 조교도 없다. 순전히 호칭뿐이다. 명예교수도 (학과 여건이 허락하면) 강의를 할 수 있는데, 보통 한 학기 주당 최대 6시간을 3년까지 할 수 있다. 그리고 3시간은 일반강사료의 2배(제법 괜찮은 유일한 대우)를 준다. 이런 기간과 시수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는 이유는 명예교수 중에 강의 욕심을 부리는 분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남을 가르치려 하는 유일한 동물이 호모사피엔스라고 한다. 어미새는 새끼가 나는 것을 지켜볼 뿐 시범을 보이거나 코칭을 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이 지켜볼 뿐이다.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나 모든 호모 사피엔스는 기회가 주어지면 흔쾌히 가르치려 한다. 비록 무보수일지라도... 희한하지 않은가? 남을 가르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


보수를 받으며 남을 가르치는 직업은 다양하게 많다. 교수도 그중의 하나다. “선생은 천직"은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옛말 중 하나다. 이 말은 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존경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지식과 가르침을 전하며 학생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교육과 발전을 책임지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말일 뿐이다.


지식과 정보는 검색하면 다 나온다. 그것도 아주 최신 정보와 지식이... 지금은 검색하지 않고 chatGPT에 물어보면 된다. 가끔 엉뚱한 지식과 정보가 나오기는 하지만, 영어로 물으면 훨씬 고급 지식과 정보를 찾아준다. 그래서 지식과 정보의 전수는 물 건너갔다.


예전에는 부모나 스승 같은 사회의 어른의 말을 들으면 중간 이상은 했다. 사회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아 어른의 말씀, 충고 및 지도에 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변화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선의를 갖고 하는 말일지라도 오류나 편견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28년이나 가르쳤지만 기계공학의 장래나 미래 전망을 할 수 없다. 신입생들에게 기계공학의 전도가 유망하니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라고 말하지 못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결국은 기본기(작문, 영어, 공학, 사회과학)를 갖추고 항상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학생들은 이런 애매모호함 말고 확실한 보장을 원한다. 평생 써먹는 의사란 자격증과 변호사란 자격증 같은 것을 원한다. 그러나 이런 자격증을 따기는 엄청 어렵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교육대학이나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사범대학이 한때는 인기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 자체가 구조조정의 대상이라 교사가 되려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는 학생의 질문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교수님의 답변에 격하게 공감한다.(  https://youtu.be/Zc1XlntF01A ) 대학도 지금은 구조조정의 대상이라 우선 교수자리가 많지 않다. 연구가 재미있어 평생을 바칠 마음으로 연구하다 보면 운 좋게 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교수란 직업을 목표로 삼으면 인생이 캄캄하다고 했다. 내 경우도 박사학위 받고 국책연구소에서 8년 4개월 연구하다가 운 좋게 교수가 된 것이지, 학생시절에 교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 추호도 없다.


지식이나 정보의 전수는 학원이나 인터넷이 담당하는 것이고, 교육은 학생의 자세와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자세와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제 난 이 어려운 일에서 벗어났다. 전혀 섭섭하지 않다. 시원할 뿐이다.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 어르신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WEIRD의 핵심이 기독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