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아이폰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아이폰을 사용했다. 아이폰5를 거쳐 6S ProMax를 제법 오래 사용했다. 배터리를 교환까지 해가며 6년 정도 사용했던 것 같다. 지금은 13S ProMax를 사용하고 있다. 아이폰의 사진보관함에 15,000여 장의 사진과 수백 개의 비디오 클립이 있다. 이 모든 것이 iCloud에 백업되어 있다.
아침에 아이폰을 열면 오래전 사진이 큰 아이콘에 보인다. 터치하면 지난 여행의 사진과 동영상이 편집되어 짧고 근사한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지난 일련의 사진들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시리즈로 연결하여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나 나는 지난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매일 페이스북을 연다. 딸이 거의 매일 올리는 손주들의 릴스를 보기 위함이다.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손주들의 릴스를 몇 번 반복해서 보고 나면, 가끔 5년 전이나 7년 전 오늘 날짜에 내가 페북에 게시한 사진들을 제일 먼저 보여준다. 5년 전, 7년 전 오늘을 회상하며 새로운 오늘을 게시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 이즈음은 예전같이 사진을 게시하지는 않는다. 가끔 내 브런치스토리 링크를 올린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사진은 행복했던 순간을 불멸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지난 사진을 보며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이라 장소와 시간이 떠오른다. 그 당시 누구와 여행했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찍고 나서 처음 보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몇 년 동안 다시 찾아보지 않았지만 애플이나 페이스북의 AI들이 지난 과거를 상기시켜 준다.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인 2019년 여름 새어머니 생신날 온 가족이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위 몰골이 말이 아니다. 만 92세 때의 아버지 모습이다. 그 당시는 잘 못 느꼈지만 오랜만에 보니 노쇠함이 아주 완연하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모습이다. 오랜만의 음식점 나들이니 머리도 빗어 넘기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계셨지만 그 당시 거의 거동도 못하셨다. 그 이후 처음 보게 된 사진이다.
내가 30년을 더 산다면 오늘 사진에서 본 아버지 모습이겠구나 했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에피소드 1.
오랜 연인이 있다. 둘은 행복한 시간을 불멸화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그림 같은 장소에서, 근사한 장소에서, 행복을 느낀 장소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어느 철학자의 강연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내세울만한 사진이 없다면 지금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근사한 휴양지에서 둘이 찍은 사진과 근사한 음식을 앞에 놓고 행복해하는 사진들을 인스타와 페북에 올리고 자신들의 iCloud에도 저장했다. 긴 연애기간 동안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연애를 한 것인지 사진 찍기를 한 것인지 모를 정도의 근사한 사진들이 쌓여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둘은 헤어졌다.
그렇게 많은 사진을 그렇게 많은 추억을 그렇게 많은 기억을 어떡하지?
새로운 연인을 찾아 떠나려면 이 모든 것을 지워야 하나?
에피소드 2.
90세의 아버지와 89세의 어머니가 산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버지와 억세고 드센 어머니다. 아버지는 일찍 은퇴하시고 수십 년을 조용히 지내셨다. 모든 경제권을 어머니가 쥐고 있다. 다행이라면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다 장성해서 독립했다. 그나마 군인연금을 받고 있어 생활은 할만하다. 노인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노인이고 또 한 부류는 성질 고약한 노인네다. 중간은 없다. 아버지는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노인이고 어머니는 성질 고약한 노인네다. 이 둘이 한 집에서 육십여 년을 살았다. 자식들이 독립한 지는 35년이 넘었다. 부부는 계속 늙어갔지만 아버지가 좀 더 빨리 늙는듯하다. 사실 평균수명도 여자가 남자보다 오륙 년 이상 길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한 번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큰 소리 하는 것을 본 적 없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큰 소리하는 것은 수도 없이 봤다. "내 덕에 당신 여태 밥 먹고 산 줄 알라고!"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집에 있던 사진 앨범을 모조리 없애 버렸다. 자신 인생의 지난 기록을 모두 지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실행한 어머니에 대한 유일한 마지막 반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