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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Sep 12. 2023

서울대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본원에 왔다. 지금은 일 년마다 간을 검사하고 결과를 확인한다. 1983년 여름에 급성간염이 와서 서울대병원 외래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꼭 40년이다. 모자수직감염으로 내게 있던 B형 간염균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발병하고 초기 5년 정도는 3달에 한 번씩, 그러다가 6개월에 한 번씩,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씩이다. 나를 처음 진료하던 의사 선생님은 정년퇴직하고, 다른 병원에서 진료 보시다가 지금은 망인이 되셨다.


젊은 제자 의사에게 환자인 나를 인계하셨는데, 젊은 선생님은 간암은 조기 발견해야 한다며 검사 주기를 오히려 6개월로 단축하셨다. 매년 하는 직장건강검진 시에도 복부초음파를 통하여 간암 조기 발견이 가능하니 서울대병원 진료는 일 년마다 받겠다고 부탁했다. 환자의 요청으로 검사주기를 늘린 것이니 조기 발견 못해도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그 일 년이 참 빨리 도래한다.


지금은 집에서 버스 두 정거장 거리인 서울대학교 병원 본원을 40년 동안 참 많이도 드나들었다. 보통 진료 일주일 전에 피검사와 복부초음파검사를 위해 방문한다. 간호사들이 파업하는 광경도 목격하고, 지하주차장 공사가 부실하여 바닥이 휘어지는 것을 강선으로 보강한 천장을 참 오래 보았다. 병원은 항상 환자들과 보호자로 북새통이었다. 주차할 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맴돌기 일쑤고, 진료실 앞에는 성명이 빼곡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예약시간을 한 시간 정도 넘겨 기다리기 일쑤고, 채혈실 번호표 뽑고도 피를 뽑기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장바닥만큼이나 혼잡하던 병원이 정말 좋아졌다. 주차장을 비롯한 공간의 여유가 아직도 좀 부족한 듯 하지만 40여 년 전에 비하면 소위 상전벽해다. 40여 년 동안 병원은 끊임없이 공사 중이었다. 어린이병동, 암센터 그리고 대한외래라는 외래환자만 보는 건물을 짓느라 상시 공사 중이었다. 지금도 자투리 땅을 찾아 뭔가를 짓고 있다.


건물과 공간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발전한 IT기술이 병원의 모든 진료와 행정 시스템을 바꿔 놓았다. 스마트폰의 사진으로 저장된 진료카드의 바코드만 들이대면 환자정보가 어디서나 읽힌다.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으면 수납창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소위 하이패스 수납처리되어 당일이나 익일 카드로 결제된다. 자동차 번호도 등록하면 병원 주차장도 내 집 차단기 드나들듯 통과한다. 이 모든 등록을 스마트폰 앱에서 가능하다. 예약이나 변경도 앱에서 가능하니 병원에 전화할 일도 없다. 병원을 방문해서는 스마트폰의 진료카드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병원진료 처음 시작하는 어르신들은 이런 첨단 시스템이 당황스럽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 진료는 어디서 받고, 채혈은 어디서 하며, 초음파검사 같은 영상검사는 언제 어디서 하고, 수납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모두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진료 접수도 바코드로 읽혀야 하고 수납이나 처방전 발행도 키오스크에서 이루어진다. 보호자인 아들 딸 손잡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어르신들이 참 많다.


환자에게 의사 선생님은 신과 같은 존재다. 옆에서 진료 대기하고 있던 어르신이 지나가는 젊은 의사 선생님에게 벌떡 일어나 소위 90도 인사를 한다. '인명은 재천'이란 옛말은 서울대병원이 없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인공호흡기뿐 아니라 코로나 이전 메르스 사태 때부터 유명해진 에크모가 소생 가망 없던 많은 사람을 살려놓고 있다. 병원이 신전이고 의사 선생님들은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제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사제(의사)가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웬만한 머리를 갖고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분야다.


오늘은 피부과다. 노화로 생기는 피부 트러블을 점검하고 확인차 왔다. 동네 피부과 의원 가느니 친숙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피부과는 동네 병원의 진료의뢰서 없이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 한 달도 전에 가능한 예약일을 간신히 잡았지만 피부병변으로 곧 임종할 것은 아니기에 상관없다. 애매모호할 수 없는 너무도 익숙한 병원에 왔다. 11:30 예약이지만 상담지연(담당환자가 너무 많다.)으로 한 시간 이후인 12:30에야 진료를 받았다. 점심시간에도 환자를 보는 선생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뺏기 위해 불필요한 질문을 안 하는 것으로 나름 노력했다. 레지던트의 조직검사 처치를 받고 조직검사 부위 상처관리를 위한 간호사의 설명까지 듣고 처방전을 들고 부지런히 주차장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서울대병원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진이 진료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가 동네 의원에서 해결해도 될 것을 굳이 서울대병원을 어렵게 예약하고 오는 것은 워낙 병원 시스템에 익숙해서다. 예약, 주차, 수납도 자동이고, 진료방식도 너무 익숙하여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맛에 불만이 없다면 익숙한 음식점을 계속 찾는 것과 비슷하다.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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