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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24. 2023

향기 vs. 냄새

서귀포 동굴에 온 지 첫날이다. 이즈음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내게는 올 것 같지 않던 불면증이 온 것 같다. 어제 오후 3시에 집을 나와 서귀포 동굴에 9시 넘어 도착했다. 6시간이 넘는 이동을 했으니 당연히 피곤하여 쉽게 잠들어야 하는데 자정이 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책을 볼까 했지만 약간의 두통이 책을 보지 말란다. 익숙하지 않은 침구에서 어렵게 잠이 들었다.


서귀포 동흥동에는 뒷산에 해당하는 솔오름이 있다. 제주도에 많은 오름 중의 하나이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아침을 먹고 솔오름으로 향했다.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기온도 미세먼지도 시정도 아주 완벽하다. 주차장에서 등산화로 갈아 신고 심호흡을 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전 열 시 반. 주차장의 많은 차들이 이미 오름에 많은 주민들이 올라 있음을 뜻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마주쳐 지나갔다.


맨발 걷기를 하는 아줌마들이 제법 있다. 나처럼 혼자 다니는 아저씨들도 있고, 딸과 함께 걷는 아버지도 있고, 비슷한 나이 때의 젊은 대학생들도 있다. 모두 아침 운동삼아 솔오름을 오른다. 사람들이 마주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냄새를 맡는다. 아줌마들의 연한 화장품냄새도 있고, 술담배에 쩐 아저씨 냄새도 있고, 풋풋한 젊음의 냄새도 있고, 노인네 냄새도 있다. 나이 들면 모든 감각이 떨어진다는데 아직 내 후각은 예민한 것 같다. 아무리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다 해도 자신의 냄새는 잘 모른다. 후각은 금세 익숙해지기에 자신의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없다.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궁금하다.


아침에 면도하고 아라미스 애프터쉐이브를 발랐으니 아라미스 향이 나야 한다. 아침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라미스 향이 예전 같지 않다.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라미스 냄새는 달라진 것 없는데 내 후각세포가 노화하여 다르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92년 처음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95년 한 해에만 러시아 출장을 무려 4번이나 갔었다. 그 당시 공무출장은 국적기만을 이용해야만 했다. GTR요금인가 뭣인가를 이용해서… 비행 중에 기내면세품이라고 뭔가를 판다. 면세라는 말에 혹해 항상 무엇인가를 사야만 할 것 같았다. 돈 버는 것 같아서… 양주, 담배, 향수를 포함한 화장품... 그 옛날에 아라미스 애프터쉐이브를 처음 보았다. 아라미스 냄새를 처음 맡았다. 그렇게 강렬한 냄새를...


이즈음 아침에 면도하고 아라미스 애프터쉐이브만을 사용한다. 그러면 저녁에 자기 전 샤워나 세안할 때 아라미스 냄새가 난다. 종일 못 맡던 냄새가 얼굴에 물을 적시면 난다. 이때의 아주 은은한 냄새가 좋다. 이렇게 좋은 냄새를 잠깐 맡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아라미스는 Estée Lauder Companies가 1964년에 시작한 남성용 브랜드란다. 내가 처음 아라미스를 구매했던 90년대 당시의 포장이 지금과 똑같다는 것이 신기하다. 냄새도 똑같을까? 궁금하다.


추석연휴에 나고야 인근 골프장에서 일주일 동안 숙박을 했다. 하루 세끼를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하는데 서빙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다. 주로 젊은 남자들이었는데 짙은 눈썹, 깊은 눈매와 약간 그을린 피부색이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사람들 같았다. 물어보니 국적이 네팔이란다. 인도로 이주했던 아리안족의 후손인가 보다. 그중의 한 청년에게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근처만 오면 그 독특한 냄새에 내 숨을 멈춰야 했다.


배드민턴 클럽에 가끔 못 보던 사람이 나타났다가 하루만 치고 사라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클럽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람은 항상 환영인데, 아주 초보가 아니라면 사람이 많을수록 다양한 게임이 성사되기 때문이다. 하루는 처음 보는 중년의 아저씨(나보단 젊다)와 한 팀이 되었는데 고역이었다.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인 숨을 내쉬며 코트를 뛰어다니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어서 게임이 끝나기를 바랄 수밖에...


손주인 네 살 도민이와 갓 돌이 지난 도은이는 항상 향기가 난다. 어미가 열심히 씻기기도 하지만 머리에서 나는 땀냄새조차 향기롭다. 특히 도은이 한테는 향수보다 좋은 냄새가 난다. 어미가 안 볼 때 도은이 머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너무 좋아서... 이 냄새를 젖냄새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든 동물에게서 냄새가 난다. 모든 사람에게서 냄새가 난다. 샤워 전과 후에는 냄새가 다르다. 몸에서 분비되는 모든 물질이 독특한 냄새를 만든다.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나는 모른다. 자신의 냄새에는 너무 익숙해 있기에 후각세포가 반응하지 않는다. 아라미스 냄새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아라미스만을 고집하여 내 후각세포의 반응이 무뎌진 것인지 모른다. 냄새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향기 나는 사람이고 싶다.

쓸데없는 선택에도 망설인다!
솔오름 정상에서 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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