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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26. 2023

탕에서

어제 조카와 한 잔 하기도 했고, 어르신 무료 폐렴 백신을 맞은 지도 3일 되었으니 오늘 아침은 사우나가 땡긴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가던 동홍힐링사우나가 목요일 오늘은 쉬는 날이다. 습관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근처의 사우나를 맵에서 검색했다. 가깝고 주차가 편하다는 현대목욕탕을 찾았다. 중독이나 습관은 다른 좋은 경험을 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온탕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적나라한 육신들이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름다운 육체는 없다. 배 나오거나, 근육이 빠져 쭈글거리는 엉덩이, 비례가 맞지 않는 머리와 다리, 의미를 모르는 문신이 있는 팔 등 다 볼품없는 육신들 뿐이다. 갑자기 사람들은 내 몸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이렇게 탕 안에 있으면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간혹 아주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어제 저녁 딸이 올린 페이스북 릴스가 생각난다. 한 살 도은이가 네 살 오빠가 쥐고 있는 하드 아이스크림을 한 입만 먹겠다고 달려들었다. 뺏기지 않으려고 오빠는 소리 지르며 힘을 쓰는데 도은이의 먹겠다는 욕망이 더 강하다. 먼저 울음을 터뜨린 오빠와 오빠에게 거부당한 설움에 우는 동생을 할머니는 옆에서 잡고 있고 어미는 옆에서 동영상을 찍는다. 먹도은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먹성이 좋은 도은이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뜨거운 탕 안에 웬 머리 하얀 아니 머리털 거의 없는 어르신이 초점 없는 눈으로 탕의 수면을 보며 혼자 앉아 있다. 갑자기 빙그레 웃는다. 무엇을 보고 웃나 하고 노인의 눈길을 쫓아가도 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혹시 치매가 빨리 온 어르신인가? 왜 웃는지 궁금하다.


동네 목욕탕에는 단골손님들의 세면도구 함이 있다. 거의 매일 목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집에서 샤워하는 것보다 뜨거운 탕이 있고 사우나가 있는 가까운 목욕탕에서 씻는 것이 좋다. 내 몸의 모든 냄새도 함께 씻어낼 수 있다. 자기 전과 자고 난 아침의 몸무게를 비교하면 300 내지 500 gm 정도의 차이가 난다. 밤새 자면서 그만큼의 땀을 흘렸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무지 많은 양이다. 땀은 노폐물을 포함하고 있기에 자신은 맡지 못하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오전에 배드민턴 치는 날은 엄청 땀을 흘리기 때문에 끝나고 샤워를 확실히 한다. 그렇지 않은 날은 동네 목욕탕을 찾아야겠다.


https://youtube.com/shorts/QOwucBzjzAM?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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