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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27. 2023

정방폭포와 청바지

경로우대라 입장료 무료...



서귀포 날씨가 너무 좋다. 역시 가을이 최고다. 기온은 낮 최고 20도 내외고 바람도 별로 없어 멀리 보이는 바다가 장판 같다. 동굴에 같이 기거하는 아들은 아침에 스쿠버 다이빙한다고 나갔고 내 일정표에는 저녁 8시 배드민턴 클럽 방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방구석에서 책이나 읽고 있을 수는 없다.


정방폭포에 왔다. 폭포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이천 원 벌러 왔다. 아마도 1985년 5월 신혼여행 때 사진 찍히기 위해 왔던 이후로 처음이다. 정방폭포는 사유지에 있는 것이라 입장료가 있다. 1985년 이후 제주도 여러 번 왔지만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볼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되어, 정방폭포 주차장에 주차해도 입장료 없는 소정방폭포나 갔었지 정방폭포는 가지 않았다. 딱 2주 전에 정식 노인이 되었다. 정방폭포 입장료가 경로우대로 무료다. 매표소에서 모바일 운전면허증 보여주고 무료 입장권을 손에 쥐었다. 이렇게 흐뭇할 수가...


정방폭포는 높이 23m의 동양 유일의 폭포다. 유일의 의미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라는 것이다. 제주도의 3대 폭포라는 것이 정방폭포를 비롯하여 천지연폭포와 천제연폭포이다. 모두 서귀포에 있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한다는 희대의 사기꾼 서복이 정방폭포를 보고는 절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의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를 새기고 돌아갔다.. 이로 인해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서귀포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단체 관광객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폭포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다.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양손으로 쌍'V'를 만들기도 한다. 무슨 의미일까? 무사히 죽지 않고 여기 왔음을 기념하는 것일까? 아마도 올림픽 경기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가 'Victory'를 의미하며 사진을 찍혔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고 승리한 것도 없으면서 따라한 것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폭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왜 사람들은 폭포를 좋아할 까?


트레킹 하는 경우에도 폭포는 중요한 기준점 역할을 한다. 어떤 트레킹 코스는 폭포가 종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든 폭포가 관광 포인트가 된다. 특별한 볼거리 없는 많은 산에 작은 폭포들이 무수히 많다. 무수히 많은 그 폭포들은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로운 개념의 탄생이다. 이름 없이 죽어간 많은 생명체를 생각해 보면 이름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 번 불린 이름을 바꾸는 것(개명)은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내 기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는 작업이니 어려울 수밖에...


사람들은 왜 폭포를 좋아할까?


폭포는 급격한 에너지의 변환이다. 높은 곳의 물이 갖고 있는 위치에너지가 낮은 곳의 운동에너지로 모두 변화되고 지면이나 수면과 충돌하면서 물보라, 굉음을 비롯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든다. 결국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순식간에 소모되는지에 따라 폭포의 등급이 정해진다. 세계 3대 폭포라는 나이아가라, 이과수, 빅토리아는 그 엄청난 높이와 어마무시한 물의 양으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빅토리아폭포는 아직 못 봤다) 많은 달력사진과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그 모습이 사용되고 많은 관광객이 폭포를 보겠다고 세계각지에서 몰려든다.


에너지의 변환과 소멸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 극적인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한다.


정방폭포 산책을 마치고 출구 바로 앞의 해물라면집을 향했다. 정방폭포는 처음이지만 라면집은 세 번째 방문이라 아주 익숙하다. 해물라면은 역시 제주도라며 혼면 하고 있는데 웬 남자가 혼자 들어온다. 많이 본듯한 익숙한 얼굴인데 잘 모르겠다. 어디서 봤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배우 같기도 하다.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잘생겼다. 머리숱도 많고... 돋보기안경을 꺼내 메뉴판을 보는 것을 보니 50쯤 되었을까? 슬림한 몸에 청바지가 어울린다. 작은 배낭을 메고 올레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올레길 걷다가 이 라면집에서 점심을 해결한 적 있으니...


영화배우 공유를 닮았지만 공유보다는 많이 늙었다. 공유가 항상 선한 역만 하기에 공유 자신이 착하다는 선입견을 갖듯이 공유를 닮은 사람도 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내가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 저와 마주친 적 없으신가요? 너무 제게 익숙한 얼굴이라...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배우신가요?'하고 묻고 싶은 맘이 목까지 차올랐다. 남자 어르신인 내가 보기에도 잘 생기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태껏 절대 입지 않던 청바지를 나도 함 입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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