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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28. 2023

아들과 대화

3년 전 아들이 6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내게 통보할 때 아들과 했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3년이란 시간은 제법 긴 시간이다. 특히 젊은 날에는 말이다.( https://brunch.co.kr/@jkyoon/317 )

"일단 그만두고 뭐 하고 살지 몇 달이나 몇 년 찾아볼 거야"라고 하던 말이 기억났다. 이제 몇 달 뒤면 퇴사한 지 만 3년이나 된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었다.

"곧 퇴사한 지 만 3년이 되는데 아버지인 내게 뭐 할 말 없냐?"

"그런가?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능청을 떤다. 3년이 되었는지 아닌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렇지! 너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얘기한 뒤로 한 세 달은 아무 일도 안 하고 다녔으니, 일 안 한 지는 3년 된 것 같은데... 내게 할 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할 말 없냐?" 할 말이 없는 듯 침묵이 흐른다. 드디어 3행시 지어내듯 할 말을 만들었다.

"3년 놀아보니, 30년도 놀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래 노는 것이 지겨운 사람 있겠냐? 불안해서 놀지 못하는 거지.

"그래 이해한다. 누가 노동하는 것을 좋아서 하겠니?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지. 일하면서 자아실현한다는 말 나도 개똥 같은 소리라고 생각해. 노동 안 하고 생존할 수 있다면, 나도 노동 안 해. 쓸데없는 욕심 안 부리면 큰 돈 안 들어. 누구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을 거야.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약간의 돈이 생기면 좋겠지. 생존을 좀 더 편하고 길게 할 수 있게 해 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거야? 평생 동안 해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하고 싶은 것 말이야." 대답이 없다. 그래.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 나도 안다.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는 것. 내 인생도 아닌데.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하면서 하는 잔소리. 선의뿐 아니라 사랑을 담고 있다며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간섭하는 것이 아니고 가이드만 한다며 부모가 하는 말들. 누가 지도편달해 달라 했던가?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하면서 언제까지 얘기할 수 있을까?


정신과의사였던 이근후 어르신은 최근 강연에서 부모의 간섭은 사춘기 시작까지라고 말했다. 과연 본인이 아들 둘 딸 둘 키우면서 그렇게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쩌면 이근후 선생님은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잔소리는 모두 사모님이 담당했는지도. 어쨌든 사춘기 시작되기 전까지만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라는 것에 나는 격하게 동의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본인보다 더 생각하는 부모는 없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서울대학교 입학하고, 결국은 박사학위까지 해서 교수가 되었다는 것을 평생 자랑하고 뿌듯해하면서 살았다. 가끔은 아들들을 윤교수 또는 윤박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마 아버지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아들이 이제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어르신이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많은 갈등과 애증의 관계였다.( https://brunch.co.kr/@jkyoon/126 )


그런 말 있다. '자식을 자랑하려 하지 말고, 자식이 부모의 삶을 자랑하게 하라고.'


많은 심리학 책들이 가장 어려운 관계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고 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 피로 묶인 천륜의 관계가 부모자식 간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는 주종관계보다 더 한 관계였다. 자식이 많으면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자식들끼리 경쟁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극도의 편애를 하는 경우도 흔했으며, 심지어 딸은 자식취급하지 않는 부모도 많았다. 그런 역사, 전통, 관습 따위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몇 대를 지나도 잘 없어질 것 같지 않은데, 지금의 자연환경(기후변화 및 지구오염)과 사회환경(비혼 및 저출산)을 보면 몇 대를 이어갈 수는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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