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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22. 2023

혼자 영화 보는 습관

씨네규브 광화문

씨네큐브 광화문 이즈음 자주 간다. 아주 옛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란 일본 영화를 본 기억이 있고, 개봉일이 한 참 지난 '헤어질 결심'의 유일한 상영관이라 찾은 적 있다. 그 경험이 좋아 자주 찾기 시작했다. 우선 집에서 25분이면 갈 수 있다. 그리고 항상 붐비지 않아 여유 있는 공간을 즐길 수 있다. 그 여유가 좋다. 편의점도 있고 식당도 여러 곳 있는데 어디나 장사가 잘 안 된다. 손님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회원가입을 예전에 했더니 생일(10/13)이라고 영화 한 편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포인트를 넣어준다. 그렇지만 이 포인트는 그 달에 사용하지 않으면 없어진다. 없어지는 포인트가 아까워 바로 운전하고 왔다. 흥국생명빌딩 지하주차장 램프는 역시 흉악하다. 램프의 차도폭이 자동차 면허시험장 S자 코스 폭 정도인 것 같다. 시험 볼 때만큼 긴장된다. 벽면 곳곳에 무수한 자동차의 상처가 길게 그어져 있다. 오늘도 무사히 지하 5층까지 내려왔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항공사 마일리지나 포인트가 쌓인다. 간혹 오래된 포인트나 마일리지가 소멸된다고 이메일이나 알림이 온다. 소멸되는 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로그인하고 들어가 보면 보통 몇십이나 몇 백이다. 이런 소멸 포인트 확인하느라 내 인생의 시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어르신의 시간은 정말 귀한 것이다.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탄신 기념 영화 선택은 순전히 포스터의 고개 숙인 여주인공의 빨간 아니 자주색 겨울모자 때문이다. 자주색에 끌린다. 영화 제목이 영어로는 'A Tour Guide'다. 관광가이드가 영어로는 'The Reliable Person'인가? 탈북처녀가 관광가이드 자격증을 따고,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탈북처녀에게 비빌 언덕(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대한민국이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설(박한영 분)이 정말로 탈북처녀인 줄 알았다. 처음 본 배우가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 잘 만든 영화다. 주인공이 인지도 높은 배우 아니 내가 알고 있던 배우였다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처음 보는 배우가 북한 사투리 섞어가며 한국사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불편한 마음을 들게 하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다음 날이나 그다음 날 이 영화에 대해서 검색하는 재미가 있다.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쓴 감상평을 읽으며 나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고, 감독과 배우들의 신상을 털면서 최근 영화계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플라워 킬링 문'은 무려 3시간 20분 동안 쉼 없이 상영한다. 어르신이 그렇게 긴 시간을 화장실 가지 않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전립선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간신히 성공했다. 이런 영화 보기 전에는 절대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영화 보다가 배고플까 봐 머핀이랑 커피를 마셨다. 전립선 상태를 검사할 수 있는 좋은 영화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가 대체로 길다고 한다.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라는데 소설이 아니고 논픽션이란다. 오클라호마주의 오세이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석유가 나는 바람에 인디언들이 돈벼락을 맞는다. 그러나 인디언들이 차례로 살해당한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배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디카프리오가 주연이라 선택한 영화다.


이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책으로 읽는다면 최소한 3일 이상은 꼬박 걸릴 테지만 주인공 남녀의 모습과 마음을 상상으로 그려보는 즐거움이 있다. 백인남자가 진정으로 인디언 처녀를 사랑하는지, 한다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에서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찾아내야 한다. 디카프리오 같은 유명 배우는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하다. '타이타닉'에서 목숨 바쳐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래서 일단 모든 영화에서 착한 남자라고 착각한다. 그 착각을 바로잡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끝까지 보고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클라우드 샤브롤이라는 프랑스 감독의 기획전이 상영되고 있다. 그가 감독한 5편의 영화가 10월 25일까지 상영된다는 것을 다른 영화 상영 전의 예고편을 통해서 알았다. 예고편의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라 전부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의식(A Judgement in Stone)'만을 일요일 저녁 시간에 혼자 보았다. 돌맹이 판결 내지는 돌에 쓰여진 판결이 왜 의식으로 번역되었는지… 1995년 개봉한 영화였다. 재클린 비셋이란 여배우 이름이 익숙하고, 주인공인 소피(Sandrine Bonnaire 분)의 표정과 분위기가 아주 싸하다. 영화 전체 분위기가 싸하다. 저런 분위기를 배우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인지 감독이 배우에게 요구해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감독의 요구를 잘 표현하는 배우를 감독이 좋아하겠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만드는데 이 영화가 일조했다는 얘기도 있다. 매표소에서 영화포스터를 무료로 준다 했을 때 난 필요 없다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포스터 달라고 했다. 영화가 좋았단 얘기다. 포스터가 영화의 여운을 더 오래 유지시켜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영화 보는 취미가 생겼다. 여유 있는 공간이 좋다. 영화를 기다리는 시간도 좋다.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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