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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18. 2023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

저는 새우를 좋아합니다. 특히 깐 새우를 좋아합니다.


사위의 생일이었습니다. 제 생일 바로 다음 날이라 잊으래야 잊을 수 없습니다. 딸과 사위가 집에서 생일잔치 한다며 초대했습니다. 전 날 제 생일은 중국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했거든요. 4살 도민이와 한 살 도은이 때문에 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뭘 먹었는지, 먹기는 했는지, 애들 먹이고 보느라 모두가 정신없었습니다. 배가 부른 것으로 보아 잘 먹기는 했지만요.


집에서 음식을 장만할 여건이 안 되는 딸과 사위는 음식을 주문했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잔뜩 시켰더라고요. 대하소금구이, 광어와 연어회, 해삼, 멍게, 소라, 새우 등등...


메인인 대하구이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광어회만 손이 갔습니다. 새우를 좋아하지만 새우껍질 까는 것은 아주 싫어하거든요. 딸이 아무 말 없이 마지막 남은 세 마리를 까서 제 앞 접시에 올려줬습니다.


전 꽃게요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에서 살을 발려내기가 아주 짜증 나거든요. 어렵게 발라봐야 꽃게살도 얼마 안 되고요. 노력에 비해 보상이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털게나 영덕 대게는 꽃게보다는 좀 낫습니다. 다리살 발려 먹기가 수월하니까요. 손도 생각보다 더럽히지 않고요.


지난 겨울에 아들과 둘이서 베트남의 휴양지 푸꾸옥에 갔었습니다. 8박 9일이나 되는 제법 긴 여행기간 동안 매일 아들과 둘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하루는 해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다른 음식과 함께 새우를 주문했습니다. 껍질째 큰 새우가 구워져서 나왔습니다. 제가 새우에는 손 안 대고 다른 음식만 먹고 있으니 아들이 묻더군요.

"아빠 새우 까기 싫어서 안 먹고 있는 거지?"

"응."

그러자 아들이 작정하고 새우 한 접시를 전부 단번에 다 까더라고요.


이병헌과 공효진이 나오는 2017년 영화 '싱글라이더'를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피곤한 몸으로 보았습니다. 내용이나 줄거리는 별로였지만 공효진의 대사 중에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귤 까주는 건 정이고, 새우 까주는 건 사랑 이래."


아들과 딸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 먹으라고 새우를 까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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