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큐브 광화문에 왔다. 일요일 저녁 시간에. 주말이면 온갖 행사와 집회로 교통이 엉망 되는 광화문을 간신히 통과했다. 오늘은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였다. 그저께 신청한 어르신 지하철 무료 교통카드는 아직 발급되지 않았다. 만약 있었다면 무료 지하철 타고 나왔을 텐데…
‘The Eternal Memory’
한가한 일요일 오후 새로운 경험을 영화에서 찾고자 상영 중인 영화를 검색했다. 가까운 씨네큐브 광화문 홈피를 열었다. 시간도 적당하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 두 개가 결합된 영화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영원한 기억이라니. 칠레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이야기란다.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손이 갔다. 씨네큐브는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할인도 해준다. 왠지 신난다. 자주 영화를 봐야만 할 것 같다. 돈 버는 것 같아서. 괜찮은 영화 한 편은 괜찮은 장편소설 한 편만큼의 감동을 준다. 장편소설은 며칠을 읽어야 하지만 영화는 보통 두 시간이면 족하니 얼마나 좋은가?
씨네큐브 광화문이 있는 빌딩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램프의 폭이 좁다. 조심스럽게 뱅글뱅글 돌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좁은 램프를 내려가다 차의 모서리나 휠을 긁게 되면 운전대를 놓아야 한다고. 다행히 오늘은 무사히 지하 4층까지 내려갔다. 크지 않은 BMW X1을 무사히 주차했는데 주변에 하얀 Jaguar XJ가 보인다. 저렇게 휠베이스와 오버행이 긴 차를 끌고 내려오다니 대단하다 싶다. 20년은 족히 넘어 곧 클래식카 반열에 오를 차를 누가 몰고 다니나 궁금했다.
영화관은 지하 2층이고, 지하 1층에 식당이 여러 곳 있었다. 시간이 충분하여 일요일 저녁을 혼자 맛있게 먹었다. 혼밥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제는 취미 수준이 되어 버렸다. 혼자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을 이제는 즐길 줄 안다. 오늘은 간장새우 두 마리를 옵션으로 추가한 가지솥밥(평생 처음 먹어봤다)을 선택하여 누룽지까지 싹싹 비웠다.
칠레는 피노체트란 독재자가 오래 통치했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저항하다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기자이자 작가인 아우구스토는 '기억의 재구성'이란 책을 통하여 그 고난의 시간을 기록했다. 그런 그가 8년 전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제대로 된 기억만이 우리의 존재를 의미 있게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우구스토와 20년을 연애하다가 3년 전에 결혼한 파울리나는 칠레의 유명한 배우다. 노부부의 사그라져 가는 사랑을 기록한 영화다.
쓸데없는 것이 궁금한 나는 아우구스토가 몇 살인지가 궁금하다. 알츠하이머가 몇 살에 발병했는지도. 영화는 옛날 영상들과 최근 영상들을 조합하여 부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아우구스토에게는 전처소생의 성장한 딸과 아들이 있다. 1984년 촬영 영상에 어린 자식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나보다는 10살 정도 많다고 추측했다. 구글링으로 못 찾겠다. 스페인어로 구글링 하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80여분 동안 노부부의 잔잔한 스페인어를 듣다 보니 스페인어를 배워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파타고니아를 갈 테니까...
https://youtu.be/LhRSdUdin5M?si=OujeL8y2yc6kN_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