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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15. 202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학동기 단체 카톡방이다.


1981년 2월에 함께 졸업한 동기들이니 이제 모두 어르신이다. 대학교 졸업 앨범을 찾아보니 딱 77명이다. 단체 카톡방에 있는 동기는 64명이다. 여기 없는 13명은 행방이 묘연하거나 동기임을 거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망자가 된 동기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과학기술원으로 진학하여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한 가까운 동기도 있고, 사회에 나와 조우한 동기도 있고, 나처럼 동기모임에 열심히라 자주 만난 동기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거의 끝낼 시점에 동기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한 동기도 있다. 동기라 해도 가까움의 정도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단체카톡방은 자녀 혼사나 부모의 상을 알리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동기모임을 알리고 사장 승진을 비롯한 축하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모친상이나 부친상뿐 아니라 빙부나 빙모상에 대한 부고장이 뜨면 시작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메시지가 굴비 엮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단체카톡방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안 읽은 메시지 수가 갑자기 늘어난다. 물론 단체방의 새로운 메시지에 대한 알림 설정은 꺼놓았기에 '카톡 왔숑' 같은 소음은 나지 않지만...


부친이나 모친상과 달리 빙부나 빙모상은 옛날에는 대우가 달랐다. 휴가일수에서 차이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여권신장과 함께 그런 차별이 없어졌다. 본인의 부모와 배우자의 부모를 동일하게 대우하게 되었다. 직장의 휴가규정뿐 아니라 직장 상조회의 부의금의 액수도 같아졌다. 궁금해졌다. 사실혼의 배우자인 경우도 똑같이 취급할까? 법원의 판례를 비롯한 사회의 많은 관례가 사실혼도 결혼과 대등하게 취급해져 가는데...


일심동체인 부부도 있지만 부부라면 일심동체여야 한다고 사회가 규정하는 것 아닐까?

부부가 일심동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https://brunch.co.kr/@jkyoon/463 )


며칠 전 대학동기의 빙부상에 대한 부고 안내장을 동기회장이 단체카톡방에 올렸다. 곧이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메시지가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빙부상을 당한 동기는 이름과 얼굴은 알지만 대학시절 단 한 번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사회에 발을 들인 분야도 달라 마주칠 일도 없었고, 동기 모임에 얼굴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 가까운 동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난 메시지를 달지 않는다. 가까운 동기라도 달지 않는다. 명복을 빌 줄 몰라서가 아니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고인의 명복을 그렇게 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한 존재인가 되돌아보는 일요일 오후다.


조의 메시지를 세어보았다. 64명 중에 34명이 조의를 단체방에서 표했다. 조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 좀 불편하다. 30명도 나와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예전에 한 동기가 단체방에 썼었다. 위로메시지는 단체방에 올리지 말고 개인톡으로 하면 좋지 않겠냐고... 나도 동감했는데 이런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보면 절대다수의 동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에선 돈으로 조의를 표한다. 조의금의 액수가 가까움의 정도, 조의의 크기, 자신의 체면(위신과 격)을 의미한다. 직접 문상을 가지 못한다면, 조의금을 부고장의 계좌로 송금하거나 아주 간편한 카카오톡 송금을 하고 개인톡으로 조의를 표한다. 자녀 혼사도 마찬가지다. 청첩장이 올라오면 난 개인톡으로 축하메시지를 보낸다. 가까움의 정도가 드러나는 옛날의 기억을 상기하며...


제일 먼저 누가 될지 모르지만, 동기 중에 자신의 부고장을 상주인 자식이 올리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 동기들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메시지를 달지는 않겠지? 내가 만약 부고장의 당사자라면 단체카톡방의 조의 메시지 같은 조문은 받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너무 까칠한 건가?????

참 오랜만이다. 꺼내본지, 또 볼 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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