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Oct 26. 2023

쓸데없는 궁금증

신제주의 일식집이다. 제주에서 산부인과를 2001년부터 열고 있는 조카(사실은 5촌 당숙이다. 사촌형님의 아들이니)와 오랜만에 저녁을 했다. 일인당 8만 원짜리 코스 요리에 그 유명한 다금바리회가 일인당 세 점씩 포함되어 있다. 능성어와 도미가 다금바리를 둘러싸고 있다. 다금바리는 자연산이고 능성어와 도미는 양식이다.

“병원은 잘 되냐? 이렇게 애 안 낳는 나라에서…”

“반찬 값이나 벌고 있어요!”

반찬 값이 얼마인지 궁금하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다.


신제주에서 내가 묵고 있는 서귀포까지 대리운전이 필요하다. 다금바리회를 난생 처음 맛보면서 소주를 안 먹을 수 없었으니. 50 km 떨어져 있고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온갖 분야에 문어발 확장을 했다는 카카오의 T앱으로 대리기사를 불렀다. 한 시간 동안 대리기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다.

“기사 아저씨, 이렇게 서귀포 가시면 어떻게 돌아오세요? ”

“서귀포에서 대리 일 잡아서 다시 제주로 와야죠.” 안 잡히면 그 시간에 버스 타고 오나?

“카카오 앱으로 저는 6만 원 결제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얼마 가져가요?”

“20% 떼고 4만 8천 원 가져갑니다.”

“와우 카카오가 엄청 떼네요.” 카카오가 플랫폼 만들어 떼돈을 벌고 있구나. 카카오 보기 싫어 대리운전 안 부르면 카카오가 손해인가? 대리기사가 손해일까?

“매일 대리기사 일 하세요?”

“주말에는 애들과 놀아야 해서 안 합니다.” 애가 둘 이상이구나 그리고 아직 아빠랑 놀기 좋아할 만큼 어리구나.

“낮에는 본업이 있고요?”

“예.” 투잡을 뛰는구나. 워낙 살기가 빠듯하니...

“늙어보니 놀아줘야 하는 애들이 있을 때가 힘들지만 제일 좋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지만 몸이 힘들면 다 귀찮은 것이 동물이잖아. 그렇게 살아내야 했던 젊은 날을 미화하고 싶은 거지.


난 주변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쓸데없는 궁금증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앞집 아줌마를 만나면 허리디스크는 다 나았는지, 남편인 한의사 선생님의 족저근막염은 어떤지가 궁금하다. 아래 집 아줌마를 보면 재수하는 딸은 올해 어디에 수시원서를 넣었는지 궁금하지만 차마 묻지 못한다. 윗집의 독거노인 할아버지는 어떻게 시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아랫집 할아버지가 코로나로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까도 궁금하다.


원숭이 무리는 종에 따라 50마리에서 200마리 정도 된다고 하는데, 무리에는 알파 수컷인 우두머리가 있다. 우두머리는 무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누가 누구와 섹스를 언제 했고, 암컷들의 새끼들은 얼마나 컸으며, 누구와 누가 무엇 때문에 사이가 언제부터 좋지 않고, 누가 언제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 비실거리는지 등등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느 날 다른 수컷이 자신을 공격해서 우두머리 자리를 뺏으려 할지를 예상하고 다른 수컷이나 암컷들과 동맹을 맺어 자신의 자리를 탐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생존의 문제다.


원숭이 무리의 생활은 단순하고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있지만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 아주 복잡하고 모든 것이 프라이버시란 명분으로 다 가려져 있다. 자동차처럼 드러내고 싶은 것만을 드러내고, 명품백처럼 남들이 봐주기 원하는 것만 노출하고 각자의 동굴 속에서 산다. 동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사는지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 결코 알 수 없다.


나와는 1/4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외손자 도민이는 궁금하다. 몇 달 뒤면 만 다섯 살이 되는 도민이는 엄마 아빠의 지극정성과 외할머니의 돌봄을 자주 받지만, 가끔 안 보이는 외할아버지가 어디 갔는지 궁금하다. 언제 갔고 어디 갔고 언제 오고 왜 갔으며 가서 무얼 하는지 등등... 할머니와 놀이를 하거나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하지만, 신기한 것이 무궁무진한 유튜브를 가장 좋아한다. 모든 것이 새로워 도민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만약 유튜브가 없다면 엄마나 할머니를 쉼 없는 질문공세로 괴롭혔을 것이다.


나와는 1/2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도민이 엄마 지민이도 그랬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고 주변의 모든 것에 너무 관심이 많았다. 유튜브 없던 세상이라 유튜브를 대신한 것은 디즈니의 만화영화 비디오였다. 최소한 한 시간은 지민이의 관심과 궁금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많던 디즈니 비디오테이프는 지금 어디 있을까 갑자기 궁금하네.


유튜브도 없고, 디즈니만화도 없던 때 나는 어떻게 내 궁금증을 해소하며 성장했을까 궁금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블루 vs. 레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