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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11. 2023

The Torment

의처증

'지옥'이란 영화를 보러 씨네큐브에 왔다.


2010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클로드 샤브롤이란 감독의 작품이 특별상영 중이다. 오후 5:20 상영시간에 거의 딱 맞춰 도착했다. 손주 도민이를 하원시켜 미술학원에 데다 주고 오느라... 이렇게 급하게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엄청 싫다. 차라리 영화를 안 보면 안 봤지 이렇게 악착(?)같이 볼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특별상영이라 자주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번 보았던 '의식'이란 영화가 너무 좋았어서 오늘 좀 무리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뛰다시피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좌석을 지정하라며 보여주는 배치도에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중간통로 뒤 열이 다리 뻗기가 좋다. 가장 가운데 자리를 이미 누가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왼쪽 자리를 달라했다. 극장이 거의 텅 비어 있는데...


이미 광고가 시작되어 상영관은 깜깜했다. 아무 데나 앉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제일 가운데 바로 옆자리의 내 좌석에 앉았다. 모르는 사람이 텅 빈 극장에서 굳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깜깜해서 잘 보지 못했지만 분명 여자 혼자 앉아 있었다. 20초쯤 지났을까? 영화의 타이틀이 막 시작되었는데 제일 좋은 자리에 혼자 앉아있던 여자가 홱하고 일어나더니 앞쪽 자리로 가버렸다.


아차 싶었다. 내가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아니 불안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혼자 영화관의 제일 좋은 자리에서 영화를 즐기려 했는데, 영화 시작 직전 불이 꺼진 뒤에 웬 남자가 그 많은 빈자리를 놔두고 바로 옆자리에 앉았으니 치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 옷에 밴 담배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른다. 내 몸에서 나는 노인네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모르는 여자를 불안하거나 불편하게 한 것이 틀림없다.


여유 있게 영화관에 도착하여 내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노심초사하며 25분을 운전하고, 흉악한 지하주차장 램프를 가장 빠른 속도로 내려와, 뛰다시피 매표하고, 거의 마지막 관객으로 입장하여 아무 생각 없이 제일 좋은 자리 바로 옆에 털썩 앉았으니...


지옥은 hell인데, 영어 영화 제목은 'The Torment'이다. Torment를 사전에서 찾으면 고통, 고뇌, 고통을 주는 사람이다. 프랑스어 영화 제목은 'L'Enfer'  랑페르이다. 1994년 작품이다.


망상장애 중의 대표적인 의처증을 다루고 있다. 의처증이 전혀 없는 내가 의처증을 확실히 이해했다. 의처증을 앓고 있는 남편의 삶도 지옥이지만, 의처증을 당하는 아내의 삶도 지옥이다. 의처증을 앓는 남편이 고통을 주는 사람이다. 영화의 시작은 정말로 아내가 외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점점 남편의 의처증이 심해져 가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은 남편은 폭력을 행사하고 행복했던 부부의 삶이 모두 망가져 간다. 정신병원에 감금되기 직전에 영화가 끝난다. 더욱이 마지막이 불명확하다. 남편이 면도칼로 아내를 살해한 것 같기도 하고, 그 자체도 망상처럼 처리했다.


망상이란 '잘못되고 고착된 믿음'이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고 망상장애의 한 유형이다. 조현병만큼이나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고 한다. 유병률도 1~4%나 된다고 하니 우리 주변에도 제법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당하는 상대방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물론 본인도 매우 힘들다. 합의나 협의 이혼도 쉽지 않고, 자신의 병식(병의 인식)도 없다. 그러니 치료가 어렵다. 치료가 어려운 아니 안 되는 폭력적인 정신병자는 결국 폐쇄병동에 감금된다.


1994년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놀라고(?) 불편한 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남자건 여자건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운다. 심지어 부부가 침대에 누워 함께 담배를 피운다. 아이가 옆에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하기는 1995년 러시아 출장을 다닐 때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뒤쪽 1/3 정도의 좌석은 흡연석이었다. 담배 피우고 싶으면 뒤의 빈자리로 가서 담배를 피우고 좌석 손잡이 재떨이에 비벼 껐다.


30년 전이 그리 오래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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