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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19. 2023

수동적 vs. 능동적

읽는 것은 수동적, 쓰는 것은 능동적?

수동적이세요? 아니면 능동적이세요?


사실 이런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수동적이지만, 어떤 때는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할 때는 능동적이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만 할 때는 수동적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지만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하라는 다그침을 받고 산다. 일(노동)이나 공부뿐 아니라 매사를 능동적으로 살라고 강요받는다.


능동적으로 살고 싶다. 내 시간을 통제한다면 능동적인 인생이다. 능동적으로 하는 것들이 빠르고 결과도 만족스럽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노동하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능동적이란 말은 좋은 의미를 갖는 단어 취급을 받는다. 능동적으로 일을 한다라든지 능동적인 인생을 살라든지. 최근에 '자기 주도 학습'이란 용어가 자주 회자된다. 하기 싫은 공부를 자기 주도적으로 즉 능동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 학습이 터무니없거나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하기 싫은 공부를 주도적으로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기 주도 학습이 성공하려면 목적이 뚜렷하거나, 뭔가 보상이 확실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선 확실한 보상은 결국은 돈이다.


능동적인 것이 다 좋은 것일까?


수동적이란 단어는 좋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사람을 수동적이라고 하면 욕에 가깝다. 그렇지만 수동적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능동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두뇌의 회전뿐 아니라 육체의 움직임도 더 많아질 테니... 모든 동물이 가능한 한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수동적인 행태가 정상이다. 수동적이고 게으른 것이 정상이란 얘기다.


하기 싫은 일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오늘 주어진 할당량만을 끝내고 빨리 퇴근할 수 있다면 모든 노동자가 능동적으로 일처리를 할 것이다. 조기퇴근이란 보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조기 퇴근 시키지 않으면서 능동적으로 일하라는 것은 강요일 뿐이다. 어떻게 회사일을 내일 같이 할 수 있단 말인가? 성과급이란 것이 있지만 매일 계산해 주는 것도 아니고 온갖 핑계와 구실을 대며 성과급 주기를 미루는 것이 일상 아닌가?


살아가고 싶지만 살아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지만, 여건과 주변상황 때문에 간신히 수동적으로 살아내고(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살아가고 있나요? 살아 내고 있나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용케 버티고 있지는 않나요?


읽는 것은 수동적인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력서 취미란에 서슴없이 '독서'라고 쓴다. 예전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인터넷에 읽을거리는 차고도 넘친다. 아무리 좋은 글을 열심히 찾아 읽는다 해도 읽는 것은 수동적이다. 수동적이긴 하나 읽고 받는 자극에 능동적으로 생각한다. 내게 자극이 없는 글이나 책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자극을 주는 글이나 책이 무지 많기 때문이다. 같은 책이라도 자극을 주지 않을 때가 있고 큰 자극을 줄 때가 있다. 내 마음의 상태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쓰게 된다.


나만 보는 일기가 아니라 브런치처럼 남들이 볼 것을 생각하고 쓰는 것은 아주 능동적이다.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브런치스토리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상이 있다. 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있거나, 조회수가 증가하는 것이 보일 때 기분이 좋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전보다 좋아지고 있구나를 느끼며 기분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처칠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사'를 써서 1953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게 오래 정치를 했고 근대사의 큰 사건에 관여한 그가 어찌 시간을 내어 그런 긴 글을 썼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처칠은 아주 예민한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이었다고 한다. 이 '아주 예민한 사람'은 정신건강의학분야의 용어나 질병명은 아니다. 2006년에 에런 박사란 사람이 제시한 개념으로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전홍진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전체 인구의 15~20%가 이런 기질을 갖고 있고, 남성보다 여성이 많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가진 이가 많다고 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아주 능동적인 활동이다.


브런치스토리를 하는 많은 작가들 중에 이 아주 예민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자신도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각이나 청각이 예민하지 않다. 아주 맛있다는 음식을 아직 맛본 적 없고, 음악이 좋아서 들어본 적 없다. 그렇지만 아직 후각이 예민하다. 지하철 옆자리에 털썩하고 앉는 젊은 여자의 안 감은 머리 냄새와 자주 씻지 않는 아저씨의 몸 냄새를 맡으면 우울해지고, 출근길 어느 여인이 뿌리고 지나간 엘리베이터 안의 향수 냄새는 기분을 좋게 한다. 내게도 우울증 소견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브런치스토리를 쓰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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