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숙소 주인과 여러 날을 함께 살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귀국하고 중학교 졸업앨범을 찾아보았다. 내가 졸업한 삼선중학교는 그 당시 한 반이 70명 정원이었고, 한 학년이 무려 15반이었으니 한 학년이 1000명도 넘는다. 3년을 다니면서 같은 반 한 적도 없으면 학교에서 마주쳤던 기억도 있을 리 없다. 졸업앨범의 1000명이 넘는 까까머리 얼굴들을 넘기면서 이름으로 찾아보니 동명이인도 있다. 그렇지만 1974년 중학교 3학년의 얼굴에서 어르신이 된 2023년 현재의 얼굴이 보인다.
배우에 대한 환상이 있다. 보통 영화의 주연 여배우는 아름답고 우아하다.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가 착할 것이라는 환상이다.
엊그제 본 영화(1994년 영화 The Torment)의 여주인공 얼굴이 낯익어서(아름답고 우아해서) 구글링을 해보았다. 이름은 엠마누엘 베아르라는 프랑스 배우였다. 엠마누엘 베아르의 2015년 모습에 깜짝 놀랐다. 2022년 모습은 완전 다른 사람이다.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외계인의 얼굴이다. 구글링을 열심히 해보니 성형수술의 부작용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지금의 생판 딴 얼굴은 성형수술의 부작용이다. 그렇게 예쁘고 우아했던 배우가 나이 들면서 자신의 자연스러운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험부담이 큰 성형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사람들은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습관처럼 꼭 본인 얼굴을 사진 속에 넣는다. 현재를 증거 하기 위함이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며 열심히 찍는다. 아니 자신의 얼굴을 사진 속에 박아 넣는다. 그리고 지난 사진 속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좋았던 추억에 잠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사진 속의 내 얼굴이 보기 싫어졌다. 많이 늙었다. 폭삭 늙은 얼굴이 보기 싫다.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껴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만을 드러냈다. 이즈음은 그마저도 사진 속에 넣지 않는다. 늙은 얼굴을 굳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침에 면도하면서 거울로 매일 나를 보는 것으로 족하다.
친구들 중에 성형수술을 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보통은 눈꺼풀 처짐이나 눈 아래 지방제거를 위함이다. 눈매가 많은 표정을 좌우한다. 그런 눈매를 성형하니 좋을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내가 알던 친구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사나워진 표정을 갖게 된 친구도 있고, 무엇을 한 것인지 차이를 모르겠는 친구도 있다. 가발을 쓰기 시작한 후배와 친구들이 있다. 가발의 가장 불편한 점은 골프 치고 함께 하는 목욕이라고 생각한다. 가발을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무척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나는 단 한 번도 머리카락 이식이나 젊어 보이기 위한 성형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 없다. 가발이나 피부관리를 받겠다는 생각도...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 젊어 보여야 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물며 직장생활이나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젊어 보이기 위해 머리염색하고 피부관리하는 것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염색도 안 하고 관리도 안 받는 내가 그들에겐 오히려 이상한 사람인지 모른다. 위장을 뜻하는 'Camouflage'는 그래도 리스크가 작다. 리스크가 작은 만큼 그 효과도 일시적이다. 그래서 성형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성형수술의 역사는 15세기 매독으로 없어진 코를 재건하는 수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유대인의 큰 매부리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유대인임을 숨기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설혜심의 '소비의 역사')
주변에 얼굴에 칼을 대는 사람이 많아졌다. 성형외과가 많아진 이유다.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이 성형하는 것은 내 알바 아니지만, 늙음을 지우기 위해 성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이즈음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다 쌓다 얼굴성형까지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더 나은 수입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중년을 지나 하는 성형수술이 더 나은 수입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영생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