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앞두고 교수 연구실에 있던 감사패 싹 다 버렸는데, 새로운 감사패를 받고 말았다. 이 감사패는 못 버릴 것 같다. 순금 열쇠가 들어 있어서…ㅎㅎ
20년 넘게 학과 소속 동아리인 자작자동차동아리 지도교수를 했다. 교수인 내가 직접 만든 동아리다. 전국의 모든 기계공학과에 자동차동아리가 있다. 우리 학과에도 자동차동아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도 회의 중에 아이디어를 내면 낸 사람이 실증해야 하듯이, 생각한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고 지도교수가 되었다.
125cc 오토바이 엔진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학생들이 손수 제작하여, 여름 방학중 3박 4일 동안 어딘가에서(대구, 춘천, 군산) 대회를 한다. 전국에서 모인 100대 가까운 자작자동차들이 경주를 한다. 지도교수랍시고 학생들의 대회에 자리를 지켜야 한다. 사고라도 나서 학생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지도교수가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도교수 참가는 필수다. 그렇게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동아리 모임을 지원했다.
졸업생들이 매년 생기고 새로운 학생들이 매년 동아리에 들어온다. 그렇게 동아리 선후배가 20년 동안 쌓였다. 처음 동아리를 함께 만들었던 졸업생들은 이미 40대 중반이 되었다. 연말에 초창기 멤버들의 송년모임을 한다. 오늘이 그날이다. 정년퇴임 전 마지막 모임이라고 제자들이 감사패를 만들어 왔다. 감사할 것도 없구먼... 지도교수지만 지도한 적 없다. 성인인 대학생들이 자기가 좋아서 만들고 경주하는데 지도는 무슨 지도... 자동차 만들 예산과 대회참가 경비를 확보해 주고,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지역주민들과 혹시라도 모를 안전사고 때문에 학교본부에서 없애기를 원할 때 방어해 주고, 대회기간 중에 자리를 지킨 것 밖에 없다.
경기도 남양읍, 구리, 오이도, 광교, 안양을 비롯해 전주에서 사업하고 있는 제자도 왔다. 토요일 저녁 참 멀리서 힘들게도 왔다. 이 동아리 모임이 끈끈하게 지속되는 이유는 우선 서로 이해관계가 없다. 오직 동일한 추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년도가 다르지만 거의 동일한 추억이다. 여름방학 전 두세 달 동안 어렵게 차를 만들고, 8월 가장 더운 시절에 대회장에서 먼지를 마시며 함께 엄청난 땀을 흘린다. 대회 성적은 별로(?)였지만, 함께 어울려 힘들게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은 아주 또렷하게 각인되어 평생 기억된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