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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18. 2023

신데렐라

내년 2월이면 만 5살이 되는 손주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유튜브를 보는 것이다. 나 혼자 손주를 두세 시간 돌봐야 하는 경우 유튜브를 함께 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오늘은 만화로 만들어진 '견우와 직녀'를 보았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 음력 칠월 칠일인 줄 누구나 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옥황상제가 그 둘의 사랑을 못마땅히 여겨(일은 안 하고 사랑놀음만 한다고)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널리 퍼지고 오래 남아 있는 것일까?


신데렐라도 정말 오래되고 유명한 이야기다. '신데렐라 신드롬'이란 것도 있을 정도다. 신데렐라 신드롬은 보잘것없는 여자가 하루아침에 고귀한 신분이 되거나 유명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신데렐라는 보잘것없는 여자다. 신데렐라가 자신의 노력으로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계모 밑에서 학대받은 것 외에 무엇이 있는가? 계모나 계부에게 학대받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은 신데렐라 말고도 엄청 많다. 학대까지는 아니라도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동정이나 연민을 느낀다.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면, 진짜 푸근하게 생긴 마법사 할머니가 신데렐라에게 나타나, 신데렐라의 처지에 동정과 연민을 느껴 엄청난 마술을 부린다. 그래서 왕자님의 눈에 띄고(간택되어) 신분이 달라진다. 왕자비가 되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왕자는 마법에 홀린 것이다. 신데렐라는 정말 보잘것없는 여자이니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동화를 어릴 때부터 계속 접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만 5살이 아직 안된 도민이가 마법사라는 것이 실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 없다.


만화영화 속의 신데렐라는 바비인형같이 생겼다. 날씬하고 8등신이며 긴 머리를 가졌고 큰 눈을 가졌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관리하기 힘든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고집하며, 쌍꺼풀수술을 비롯하여 눈을 찢고(크게 보이라고) 코를 높이는 성형수술을 그렇게 용감하게 받는 것 아닐까?


신데렐라뿐 아니라 만화 속의 백설공주나 잠자는 공주도 참 예쁘다. 이렇게 예쁘게 생긴 공주들을 어릴 때부터 계속 보다 보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동화는 동화일 뿐이라고 아무 문제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어릴 때 잠드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다음날 학교나 유치원을 가야 하니 일찍 불 끄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은 감았지만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낮에 본 만화영화나 만화책의 공주들이 나타난다. 공주들 옆에 백마 탄 왕자들도 있다. 상상인지 공상인지를 한참을 해야 어렵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들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외손주 도민이도 재우기가 힘든 아이다. "왜 이렇게 잠을 못 드냐?"라고 애엄마가 푸념(?)을 한다. "지민이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고..."


동화, 디즈니 비디오, 지금은 유튜브가 어릴 때 받는 대표적인 외부 자극이다. 이런 자극들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어르신이 되도록 그때의 자극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주 도민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무엇을 보았는지를 아주 먼 미래(도민이 환갑쯤)까지 기억할지도 모른다. 무슨 음식점에 갔을 때 엄마가 무슨 유튜브를 틀어줬는지를 성인 돼서도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한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현실은 예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어려운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라면 슬픈 일이다. 신데렐라를 찾아왔던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다면 슬픈 일이다. 왕자나 공주가 될 수도 없거니와 동화 속 그런 왕자나 공주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왕자나 공주 같은 인생의 동반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디즈니 때문인지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진 초능력의 소유자가 나오는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은 현실이 암담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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