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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27. 2016

난 골프를 참 좋아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수영했다는 곳 옆에 앉아...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에 아버지(그 당시 40대 후반)는 골프에 입문하셨다. 마당이 제법 넓은 옛날 집에 매트와 그물망을 설치하고 틈만 나면 골프채를 휘두르셨다. 집 유리창을 깨신 적도 있다.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 가셨고 주중에도 나가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집에 연습장이 있는데도 나에게 쳐보란 얘기를 안 하셨다. 내가 궁금해서 쳐보려고 달려들면, 말리면서 공부나 하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이기적이셨다.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나가자 장인어른이 골프를 배워보라고 권하셨다. 정확하게 1988년 여름이었다. 전국이 올림픽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라 기억이 생생하다. 장인어른은 체격도 좋고 운동신경도 남보다 뛰어나 골프를 아주 잘 치신다. 테니스도 오래 치셨는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오래 치던 테니스를 버리셨단다.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딱 한 달 코치받고 장인어른 따라 골프장을 갔다. 처음 라운딩 한 골프장은 평생 잊지 못한다.

그렇게 시작한 골프가 어느새 30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골프를 배워 새벽 골프를 치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그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이 설레서... 꿈속에서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 사이에서 드라이버를 치는 꿈을 꾼다. 그러면 하얀 공이 하늘을 가르며 가운데로 날아간다. 그러다 잠이 깨어 시계를 보면 밤 한시다. 그때부터 잠 못 이루며 밤을 지새우다 이른 새벽어둠을 가르며 골프장을 향한다.

이제는 나이 들어 밤잠을 설치는 새벽 골프는 사양한다. 그만큼 골프에 익숙하고 무뎌진 것이다. 지금도 처음 가는 새로운 골프장에 약속이 잡히면 마음이 설렌다. 이 골프장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궁금해서... 대학시절 미팅이나 소개팅 나가기 전날처럼 마음이 설렌다. 어떤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날까 하고 궁금해서... 이런 나의 욕심에 한국에 있는 골프장을 130 군데 이상 가보았다. 그리고 확실히 기억한다. 어느 골프장이 가본 곳이고 어느 골프장이 아닌지를...

사촌 형이 있다. 그 형은 좋은 곳에 관광을 가면 꼭 옵션투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말을 타든 지, 골프를 치든지, 래프팅을 하든지 그곳만의 독특한 activity를 해야 그 경치를 가슴에 담고 올 수 있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젊을 때부터 나는 그 형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해외여행을 가면 혼자라도 골프 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골프는 너무 재미있는 운동(?)이다. 난 사실 운동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락일 뿐이다. 취미일 뿐이다. 한국사람들은 워낙 내기를 좋아해서 골프를 칠 때도 정말 다양한 내기를 한다. 그러나 난 나와의 내기가 더 좋다. 나 나름의 기준으로 나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골프는 가능하다. 여럿이 같이 쳐도 내 샷에만 집중할 수 있다. 상대적인 게임이라기보다는 절대적인 게임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와의 경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늙어 체력이 달려 그날 돈을 잃으면 골프를 미리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 안되니... 오죽하면 골프를 한 번 같이 쳐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안다고 하지 않나? 같이 오래 관계를 맺을 만한 사람인지...

그러나 무척 정교한 운동이라 무지하게 많은 요인들이 그날의 스코어에 영향을 준다. 오죽하면 108가지의 골프가 안 되는 이유가 있다 하지 않는가? 어제 술을 마셔서, 어깨에 오십견이 와서, 아직 아침 화장실을 못 가서, 드라이버가 내 것이 아니라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캐디가 맘에 안 들어, 등등... 108번째 이유가 오늘이라서 란다. 많은 골퍼들이 "이상하다. 오늘 왜 이리 안 맞지?" 하기 때문이다. 109번째 압권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너 때문이란다. "딴 애들이랑 치면 잘되는데 너랑만 치면 안되네."

우리는 남을 탓한다. 내가 오늘 골프가 잘 안 맞는 것은 내가 못 쳐서가 아니다. 나 아닌 외적인 요인 때문에 잘 안 맞는 것이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처한 어려움이나 곤경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난 잘했는데 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버지나 어머니 때문에, 집사람 때문에, 형제나 친척 때문에, 아니면 자식 때문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남 탓하느라 아까운 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내 시간과 내 감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니...

골프는 분명 재미있는 운동(?)이고 골프를 배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너도 나도 골프에 입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세상에는 골프 말고도 그 보다 재미있는 다른 세상이 많다. 많아도 너어-무 많다. 그러나 이런 세상들은 입문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고, 입문 후 즐기기 위해서도 많은 것을 쏟아 버려야 한다. 시간, 돈, 감정 등등을...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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