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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15. 2024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교회를 다니는 또는 다녀본 사람은 누구나 암송하는 주기도문의 거의 마지막 구절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살다 보면 온갖 유혹에 시달린다. 유혹은 보통 아주 달콤하게 다가온다. 유혹의 사전적 정의는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이다.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딸이 이즈음 자주 시험에 든다고 한다. 외손주 도민이(곧 만 5세)가 똥땡깡을 부리면 결코 때리지 않고 키우겠다는 다짐이 흔들린다고 한다. 그 흔들림이 시험이고 유혹이다. 그래서 그랬다. 나도 널 키울 때 시험에 많이 들었지만 결코 때린 적은 없다고... 도민이가 널 닮아서 그런 거라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말도 안 되게 부모를 힘들게 하면서 큰다고...


누가 그랬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3년 동안 온갖 재롱을 부린다. 그 3년 동안 부모에게 부린 재롱이 평생 할 효도를 다한 거라고. 그러니 자식에게 더 이상의 효도를 바라지 말라고.


도민이는 효도 다했다. 힘들게 키웠지만 온갖 재롱으로 그 힘듦을 버티게 해 줬다. 자식의 효도(재롱)를 받고 못 받고는 부모 몫이다. 재롱을 보면서 재롱으로 받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부모탓이지 자식의 탓이 아니다. 3년이 지나고 자아가 생기면서 요구가 많아진다. 요구를 들어줄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 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면 울고불고 생떼를 부린다.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거나 누워버리기까지 한다. 요구가 유난히 많은 아이가 있고 좀 적은 아이가 있을 뿐이다. 요구 없이 부모가 해주는 대로 받는 아이를 순하다고 한다. 나는 순한 아이가 아니었다. 지민이도 순한 딸이 아니었다. 도민이도 결코 순한 아이가 아니다.




유치원을 즐겁게 다니는 도민이는 벌써 유치원 끝나고 태권도와 미술학원을 다닌다. 그 외의 시간,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아빠가 놀아준다. 엄마가 놀아주고 할머니가 놀아주고 그도 안될 때 내가 놀아줘야 한다. 너무 유튜브만 보게 할 수는 없으니 놀이를 해야 한다. 무슨 놀이를 시작할까?


화투나 트럼프를 시작해야겠다. 어릴 때 화투나 트럼프 카드를 뒤집어 깔아놓고 두 장을 뒤집어 같은 숫자(트럼프)나 같은 달(화투)이면 뒤집은 사람이 갖는 놀이가 기억난다. 깔아 놓은 화투나 트럼프가 다 없어지면 누가 더 많이 가졌나를 갖고 승부를 가리는 뒤집기 게임을 시작해야겠다. 나이 들어 단기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중요한 것조차 기억하기 싫은데, 손주와 놀기 위해 단기 기억력 게임을 하겠다니, 나는 좋은 할아버지가 될 소양이 충분하다.


집에 화투나 트럼프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화투게임이라는 고스톱이나 트럼프로 하는 게임(마이티, 훌라, 포커 등등)을 할 줄 알지만, 근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도박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점당 100원 고스톱이나 마이티는 도박이 아니다. 일종의 내기 게임이라고 보지만, 그렇게 앉아서 하는 게임(장기, 바둑 포함)에 선천적으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몇십 년 동안 만져본 적 없다. 어디서 화투와 트럼프를 살 수 있을까?


48장의 화투와 52장의 트럼프는 너무 많으니 일단 1/4 정도만을 갖고 시작하다가 점점 장수를 늘려가면서 게임을 완성할 생각이다. 단기 기억력이 한창 성장하고 있는 손주와 해볼 만할 것 같다. 핑크퐁이니 포켓몬 유튜브를 보는 시간을 줄여볼 요량이다. 그리고 친구와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지만, 친구가 없을 때는 할아버지랑 노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친구 대용으로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곧 은퇴하는 할아버지의 새로운 쓸모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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