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09. 2024

중년부인의 젖가슴


대만 가오슝 가는 길이다. 대만은 난생처음이다. 선배가 모객 한 24명의 가오슝 4박 5일 골프투어다.


오후 1:25 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골프백을 챙기고 옷가지를 챙기면서 신나는 것이 아니고 좀 귀찮다고 아니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괜히 간다고 했나? 매일 아침마다 배드민턴 치고, 오후에는 완벽한 자유시간을 즐기는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잘한 짓일까?  골프도 칠만큼 쳐서인지(35년을 쳤으니) 아니면 나이 들어 내 의지대로 골프가 안되고 오히려 수준이 점점 떨어지니 좀 시들하다. 그리고 대만에 뭐 그리 새로울 것이 있겠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여태껏 안 가본 것이다.


가오슝 가는 항로가 제주도 상공을 지나간다. 운 좋으면 한라산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바일 체크인이 열리자마자 왼쪽 창가 자리를 잡았다. 날개가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가능한 앞 열에.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은(서울이 영하 11도) 날이다. 한반도 상공은 아주 깨끗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충청도와 전라도 상공을 지나며 이제는 익숙한(제주도를 수시로 오가며 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완도 앞바다를 건너며 구름이 깔리기 시작한다. 쫙 깔린 구름 때문에 제주도가 안 보인다. 운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한라산 정상부만이 구름을 뚫고 봉긋이 올라 있는 것이 보인다. 중년부인의 젖가슴 모양(?).


https://brunch.co.kr/@jkyoon/511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 프랑스의 혼혈 여인이 설악산 울산바위를 중년부인의 젖가슴 마냥 하늘을 향해 봉긋 솟아 있다고 묘사했다. 어떻게 울산바위가 봉긋 솟아 있냐고? 병풍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지! 그리고 중년부인의 젖가슴은 대체 어떻게 일반화할 수 있냐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났다.


여류소설가가 여자의 몸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고, 남자가 여자의 몸에 대해 묘사하면 퇴폐적이거나 음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보면…


젖가슴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아닐까? 엄마의 젖가슴이 아주 아련히 기억난다. 어르신이 되어버렸는데도. 어쩌면 60년 전을 기억난다고 우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기억도 없으면서, 제대로 된 추억도 없으면서, 환상을 기억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울산바위를 보고 젖가슴을 생각한 여인이나 구름 위로 솟은 백록담을 보고 젖가슴을 떠올린 어르신이나 엄마의 젖가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록담


매거진의 이전글 즐턴 한 지 딱 만 2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