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할 때 더 신난다.
구마모토 공항이다. 국제공항이라지만 국제선은 몇 편 없는듯하다. 아담한 지방공항이다. 국제선 출발 게이트가 딱 세 개다. 10시 30분 출발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히토요시 숙소에서 7시에 출발했다. 90 키로의 거리를 한 시간 10분 걸려 공항에 도착했다. 짐(골프채) 부치고, 검색대 통과하고, 출국심사받고 면세구역에 앉았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집에 간다니 너무 좋다.
여행은 떠날 때 설렌다. 새로운 경험을 맛볼 것 같아서... 4박 5일 만에 집에 가는데 더 신난다. 구마모토 여행이 고행이었나? 그럴 리가... 매일 18홀 골프 치고, 매일 저녁 만찬을 즐겼는데 고행일리 없다. 그런데 왜 신나는 것일까? 아쉽지가 않고...
여행은 일상을 떠나는 것이다. 보통 일상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일상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다면, 노동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일상적 노동을 벗어나기 때문에 여행을 떠날 때 신나고 설렌다. 귀국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귀국할 때는 아쉬운 것이 당연해야 한다. 그런데 아쉽지가 않고 신나는 이유는 뭘까?
귀국할 때 더 신나는 이유는 일상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겨우 4박 5일 동안 일상을 벗어났는데...
구마모토행 비행기 출발시간이 아침 7시 50분이었다. 3시에 일어났다. 이런 시각에 일어나기 싫지만 가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출발 전날 저녁에 골프채는 정리해서 쌌지만 양압기를 넣어야 하는 캐리어 짐은 당일 챙길 수밖에 없다. 밤에 양압기 하고 자야 하니까. 아직 깜깜한 새벽, 운전하고 인천공항으로 길을 나섰다.
골프장이 있는 히토요시시는 구마모토 공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다. 쿠마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2020년 여름에 쿠마강이 범람하여 강변 주변 건물들을 집어삼켰다. 쿠마강변에 있는 선히토요시 호텔 외벽에는 그 당시 물이 차올랐던 수위가 표시되어 있다. 건물 1층은 물에 완전히 잠겼었다. 거의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도시가 참 깨끗하다. 어느 구석에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 없다. 일본은 올 때마다 느끼지만 참 깨끗하다. 버려져 있는 것이 없다. 어디나 참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7시 반에는 골프장으로 이동하는 승합차를 타야 한다. 이동시간은 20분 정도라 8시 반이 골프 티업시간이다. 이런 스케줄을 따라가려면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잘만큼 자고 자연스럽게 깨는 것이 아니라 알람소리에 깬다.
은퇴한 어르신의 한국에서의 내 일상은 이렇다. 잘만큼 자고 자연스럽게 깬다. 보통 7시 전후하여 눈이 떠진다. 평균 7시간 정도 푹 자는 것 같다. 일어나면 아침식사를 빵으로 가볍게 하고, 9시 전후하여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 체육관에 간다. 환복하고 몸 풀고, 두 시간 정도 회원들과 어울려 힘들게 복식게임을 하고, 뜨거운 샤워까지 하고 나면 정오를 넘긴다. 점심을 보통 혼자 먹는다. 이즈음 혼밥이 아주 익숙하다. 초밥, 칼국수, 짜장면, 라면, 김밥, 쌀국수, 햄버거 등 그날 먹고 싶은 것을 내 맘껏 선택한다. 어쩌면 발길 아니 차가 가는 대로 주차가 편한 곳에 멈춘다.
전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여유의 극치라고나 할까?
일상이 아주 환상적이다.
이런 일상을 두고 일본 구마모토에서 매일 골프를 치기 위해 알람으로 깨고, 생선구이(난 아주 싫어한다 가시 발리는 것을)가 메인인 일본식 조찬을 하고, 익숙하지 않은 화장실(다행히 비데는 어디나 있다)에서 화장을 하고, 골프장으로 시간 맞춰 이동을 하고, 골프를 치고, 샤워를 대충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매일이 불편한 것이다. 무엇이 제일 불편하게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함께 간 일행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손주가 오면 좋고, 손주가 가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눈에 넣어도 괜찮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주(전생이 애인이란 말도 있다.)를 보고 있노라면 좋기는 하지만 일상이 깨진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손주가 가면 다시 일상이 되니 더 좋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상이 이미 환상적이라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 좋은 것이다. 신나는 것이다. 그런 일상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일종의 관성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힘든 일상을 살고 있을 때, 아니면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을 때 갖게 된 습성이다. 그 습성을 버리기 쉽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행보다 내 일상이 더 환상적이다.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없는 일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