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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3. 2024

도민이와 목욕탕

서귀포 아들 집에서 딸네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날씨도 좋지 않아 딱히 갈 곳도 없어 집에서 모두 개기고(?) 있다. 좁은 집에 어른 다섯에 손주가 둘(도민이는 거의 만 5살, 도은이는 18개월)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애를 데리고 누군가 나가주면 딱 좋을 것 같다.


막막하면 목욕탕에 간다.


도민아 할아버지랑 목욕탕 갈래?

약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가겠단다. 난생처음이다. 할아버지랑 둘이 목욕탕 가는 것은...

도민아 목욕탕 몇 번 가봤어?

아빠랑은 한 번, 엄마랑도 한 번.

목욕탕에서 뛰어다니다가 넘어지면 꽈당해! 절대 뛰면 안 돼! 우석이 삼촌 너만 할 때 목욕탕에서 꽈당해서 뒤통수 세 바늘 꿰맸어.

우석이 삼촌 뒤통수에 지금도 꿰맨 자리 있어?

그럼. 아직도 있지.


서귀포 동홍동 현대목욕탕에 갔다. 고대나 근대가 아니고. 초등학생은 5,000원, 7세 이하는 4,000원이다. 중학생부터 성인 취급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열쇠를 두 개 받았다. 옷장에 자기 옷을 넣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항상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병이다. 깊은 병이다. 도민이는 아주 조심스러운 아이다. 주변의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고 남들이 자신에게 관심 갖는 것을 좋아한다.


뜨거운 온탕에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워낙 조심성이 많은 아이라. 30분도 욕장안에서 못 버틴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 둘이 냉탕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도민이는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뿐 차마 들어가지는 못한다. 물이 차고 깊다. 나도 찬 물은 별로다. 몇 번을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냉탕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거품타월로 비누칠하려 하니 간지럽다고 야단이다. 결국 손으로 비누칠을 했다. 비누칠하는 내 손의 감촉이 너무 좋다. 도민이 피부가 아주 매끄럽다.


욕장에서 나와 탈의실에서 갖고 온 귤을 하나씩 까먹었다.

도민아 너무 맛있지?

응 맛있어.

목욕하고 나면 기분 좋은데, 이렇게 과일 먹으면 정말 좋지. 이 맛에 목욕하는 거야! 서울 가면 또 할아버지랑 목욕 가자.

응.


손주와 둘이 목욕탕 가기. 정말 좋은 경험이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목욕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도민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막막하면 목욕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란 것을 각인시켜주고 싶다. 도민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목욕탕을 갈 때마다 할아버지를 기억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 같다.


'할아버지가 그랬어. 기분이 우울하면 목욕탕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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