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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2. 2024

안목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들은 신간을 읽고 소개하는 기사를 쓴다. 그런 기사들을 읽다 보면 가끔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잘 쓴 기사는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욕구를 느끼게 한다. 학교 도서관의 소장도서를 검색하면 당연히 없다. 신간이니. 도서관 웹에서 도서구매 신청을 한다. 그러면 보통 일주일 이내에 도서관에 책이 도착한다. 도서관 로비에 책이 준비되었고, 3일간 로비에 보관한다는 문자를 받으면, 새 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열일 제쳐두고(은퇴모드에 들어서니 제칠 일이 없다) 바로 도서관에 간다.


정희진이란 여성학 연구자가 쓴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손에 쥐었다.

표지를 젖히니 바로 저자 소개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소개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안목 있는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군 위안부 문제를 계속 공부하는 연구자,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자원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싶다."


자기소개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자신을 정의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 있을까? 자신의 존재이유를 남에게 일목요연하게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기소개를 한번 써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의 존재이유를 정리해보고 싶다. 그런데 존재이유가 없으면 어떡하지? 좀 걱정되네...


안목이란 단어에 꽂힌다. 사전에는 '안목'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라고 정의된다. 견식이라니. 볼  見이니 보고 인식한다는 것이네. 그렇지만 안목이란 좀 더 고상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차이를 분별하는 정도가 아니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능력이나 특히 우아함 같은 것을 가려내는 능력처럼 생각된다. 명품백을 알아보는 능력도 안목이고 자동차의 브랜드나 모델을 알아보는 것도 안목이지만 이런 안목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안목 있는 독자'란 글 속에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내거나 행간에 감춰진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남들은 읽고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국민학교 때부터 내가 가장 어려워한 과목은 국어였다. 지문을 읽고 주제를 찾는 문제를 제일 힘들어했다. 결국  이과를 선택하고 공학을 전공했던 것은 가능한 국어와 멀어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나는 '안목 있는 독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사물이나 상황 속에서 보고 분별하는 안목 있는 사람은 되고 싶다.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좋은 특징을 알아보는 안목, 애매모호한 상황(혼자 여기저기 방랑하다 보면 자주 맞는다) 속에서 빨리 문제를 인식하는 안목은 갖고 싶다. 문제가 제대로 인식되어야 창의적인 문제 해결도 가능하니까...


페미니즘은 정말 어렵다. 나처럼 누나나 여동생도 없이 성장하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여자(?)인 어머니조차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여자를 제대로 접해보지 못하고 성인이 되었다. 아무리 페미니즘 관련 책을 여러 권 보아도 결국은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감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지만 여자가 보는 시각 내지 관점이 아주 새롭다. 전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신나는 기분이다. 난생처음 본 경치 앞에서 흥분하는 꼴이다. 그리고 땅 위에서 2차원으로 보다가 드론으로 촬영된 아이맥스 3차원 영화를 본 기분이다.


조금은 여자의 생각(?)에 대한 안목이 생기는 것 같다.


안목 있는 우아한 어르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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