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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1. 2024

여압장치(Cabin Pressurization)


서귀포를 비롯하여 동남아로 방랑길을 자주 떠나다 보니 비행기를 탈 기회도 많다. 방랑은 어떤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성비 좋은  비행기표를 발견하면 바로 구매한다. 그렇게 방랑은 시작된다. 비행기표를 발견하고 구매할 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 정작 떠날 때는 너무 좋은 일상(노동하지 않는 일상보다 더 좋은 일상은 없다)을 떠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심지어 짐을 챙기는 것이 귀찮기도 하다.


비행기 좌석을 구매와 동시에 정하면 항공사들이 추가비용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24시간 전에 가능한 모바일 첵인을 남보다 서두르면, 창가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새의 눈(Bird's eye view https://brunch.co.kr/@jkyoon/47 )으로 창 밖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이륙하는 동안 순항고도에 도달하기도 전에 자주 잠에 빠져든다.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왜 비행기만 타면 잠에 빠져드는 것일까?




비행기는 일종의 압력용기다.


고공에 다다르면 외부 기압이 엄청 낮아진다.  에베레스트 정상(8848 m)에서는 0.3 기압까지 떨어진다. 이 압력에서는 보통 사람이 숨 쉴 수 없다. 따라서 비행기 내부는 압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 압력을 지상과 같은 1 기압까지 높이면 비행기 내외부의 압력차가 커진다. 큰 압력차를 비행기 몸통이 견디기 위해서는 튼튼하게(따라서 무겁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고공에서의 비행기 내부 압력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가능한 낮은 압력으로 유지한다. 이 압력이 보통 0.7 내지 0.8 기압이다. 해발고도 3000m에서의 대기 압력이 보통 0.7 기압이다. 이 압력에서 보통 사람들은 고산병(산소부족)을 경험한다.


대기압이 낮은 따라서 산소 분압이 낮은 곳에서 산소 부족에 따른 생체의 부적응이 고산병이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졸음이 오고 두통을 느끼며 심하면 뇌에 물이 차고 의식을 잃는다. 사람에 따라 고산증을 느끼는 정도에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천천히 고도를 높이면 신체가 적응한다. 아주 높은 산은 산소 부족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올라야 한다. 산소마스크를 쓰면 버틸 수 있지만 계속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고산병 증상이 심하면 바로 낮은 곳으로 하산해야 한다.


고공을 나는 비행기 내부의 압력을 높이는 장치를 여압장치라고 한다. 모든 여객기는 여압장치를 갖고 있다. 비행기 엔진의 압축공기 일부를 뽑아, 냉각(기체가 압축되면 온도가 높아진다)시켜 기내의 순환된 공기와 혼합하여 비행기 내부로 계속 공급하는 장치이다. 배기밸브를 이용하여 기내 압력을 조절한다. 만약 고공(10,000 ft = 3,048 m 이상)에서 이 장치가 고장 나면 조종사는 가능한 한 빨리 비행기를 승객들이 의식을 잃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고도(보통 8,000 ft = 2438 m)까지 낮춰야 한다. 이 과정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산소마스크가 객실 천장에서 떨어진다.


헬리오스라는 키프로스의 항공사가 있었다.  키프로스에서 아테네로 가던 비행기가 아테네 근처에서 추락했다.  사고 발생은 여압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정비사가 여압장치를 점검하면서 오토가 아닌 매뉴얼로 스위치를 돌려놓았는데, 조종사들이 매뉴얼대로 여압장치를 확인하지 않았다) 기내 압력이 천천히 떨어져 승무원과 승객 모두가 의식을 잃었다. 조종사 마저 잠든(?) 비행기가 자동조종장치에 의해 비행하다가 연료가 바닥나 추락했다. 이 사고 후에 항공사는 망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순항고도에 다다를 때까지 여압장치에 의해 기내 압력이 조절된다. 대기압보다는 낮은 기내 압력 때문에 산소결핍 상황이 된다. 이때 산소부족으로 잠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예전(젊을 때)보다 잠이 쏟아진다. 5분 내지 10분 정도 후 잠이 깬다. 의식이 돌아온다. 아주 개운하다. 여압장치가 조절한 기내 압력에 신체가 적응한 것이다.


이륙하면서 자주 잠든다. 신체가 노화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심폐기능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어르신이 되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영생할 줄 알았더냐?


창 밖의 경치가 보인다. 구름 위다. 구름이 큰 오리털 이불을 깔아놓은 것 같다. 신선은 구름 위에 산다. 신선이 된 것은 아닌가 잠깐 착각한다. 이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스르르 잠들며 떠날 수 있다면 복 받은 것이다.


새해(2024.1.1) 복 많이 받으라고 여기저기서 성화인데, 이런 복은 나중에 꼭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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