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착륙하여 게이트로 이동하는 중(택시라고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위 보관함에서 가방을 꺼내려는 사람이 제법 있다. 스튜어디스의 착석하라는 소리침과 방송에 승객 모두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다.
비행기가 게이트에 정지하고 엔진 끄는 소리가 나면 거의 모든 승객들이 일어선다. 그 틈에 조금이라도 앞으로 가 먼저 내리겠다고 승객들로 꽉 찬 좁은 복도를 헤치고 나가려는 사람도 있다. 어이가 없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국제선은 입국심사장으로 국내선은 짐 찾는 곳으로 거의 뛰다시피 하는 사람이 있다. 연결 항공편의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구먼 보통은 입국심사장의 장난 아니게 긴 줄 때문이다.
사람들이 뛰면 나도 톰슨가젤처럼 뛰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에서 200,000마리가 넘는 개체수를 발견할 수 있으며 동아프리카(케냐와 탄자니아)에서 가장 흔한 가젤에 속한다. 톰슨가젤의 최고 속도는 80~90km/h에 달하며, 치타, 가지뿔영양, 스프링복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빠른 육상 동물에 속한다. [위키백과]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톰슨가젤의 무리가 있다. 한가롭게 초원의 풀 뜯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의 가젤들이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사자가 나타났는지 표범이 나타났는지 확인할 시간은 없다. 무조건 뛰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도 가젤처럼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 수만 년 이상이다.
지금 내가 세렝게티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남들이 뛰면 무조건 빨리 뛰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남보다 빨리 위험지역을 벗어나 생존했던 선조들의 후손이라 그렇다. 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사바나에 톰슨가젤의 무리가 있다. 암사자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암사자들은 한 마리의 가젤만 잡으면 된다. 사자 무리의 만찬은 한 마리면 족하다. 가젤들이 사자들과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어린 가젤도 빨리 못 뛰지만 늙은 가젤은 뛸 기운이 없다. 한 마리의 늙은 가젤이 뛰지 않고 사자들을 마주 본다. 늙은 가젤의 장례식이 이렇게 곧 행해진다.
항공사의 휠체어 서비스는 대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장애나 질병도 있지만 고령인 경우가 더 많다. 기내의 좁은 복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휠체어도 비행기에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휠체어에 탄 어르신들을 공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휠체어에 탄 어르신은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가장 먼저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렇지만 가장 늦게 비행기에서 내린다. 난 한 번도 그들의 하기 모습을 본 적 없다. 나를 포함한 모든 승객들이 가젤처럼 신속하게 비행기에서 다 빠져나가는 것을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뛰기를 포기한 늙은 가젤의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