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게임
낮 최고 기온이 40도가 넘는 칸차나부리에서 장박골프를 마치고 지인들과 방콕의 수완나푸미 공항 가는 길이다. 지인들은 공항에서 밤비행기 타고 귀국하고, 나는 6박을 더 태국에 혼자 머물 계획이다. 9박 동안 일행의 총무가 있어 나는 더위에서 생존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다섯 시에 아침 먹고 일출과 함께 골프를 시작한다. 18홀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쉬다가 오후 4시에 이른 저녁을 먹고 부지런히 9홀을 라운딩 하면 여섯 시 반 일몰과 함께 하루가 끝난다. 8시 전후하여 잠자리에 든다. 이런 일상이 습관이 되어 흘러갔다.
칸차나부리에서 꼬박 3시간이 걸려 공항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공항 근처의 호텔까지 셔틀이나 그랩을 이용하여 이동해서 하루 자고, 내일 파타야로 택시나 그랩으로 이동해야 한다. 파타야는 난생처음이다. 혼자 방랑할 생각이다. 초행길은 항상 많은 위험과 애매모호함이 있다. 이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혼자 방랑하려니 정신이 바짝 든다. 사기꾼을 피하고, 바가지를 안 쓰고 방랑한다는 것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게임에 임하면서 두뇌가 바짝 긴장함을 느낀다.
공항 부근에서 1박 하는 호텔의 안내를 보면 2층 도착장 4번과 3번 게이트 사이에서 호텔 피켓을 찾아 호텔로의 셔틀을 요청하라고 돼있다. 도착장 로비는 사람들로 붐빈다. 마중 나온 여행사 직원들이 무수한 피켓을 흔들고 있고, 방금 도착한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호텔들의 이름이 적힌 피켓들이 잔뜩 모여 있다. 내가 예약한 호텔의 피켓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관광대국인 태국이라 이런 시스템도 제법 합리적이다. 여러 호텔의 피켓 뒤에 서서 호텔과 전화 통화하고 셔틀이 오면 셔틀까지 안내하는 사람들의 일이 상당히 체계적이다. 15분을 기다린 뒤에 출구 앞에 정차한 밴으로 안내받아 나 혼자 탑승하고 호텔에 왔다. 혼자 이 큰 차를 탔는데 기사한테 팁을 줘야 할까? 얼마를 줘야 할까? 어느 시점에 주는 것이 그럴듯할까? 두뇌가 빙빙 돌고 있음을 느낀다. 기사 옆에 'Tip Box'가 보인다. 그렇지만 저기에 넣고 싶지는 않다.
오후 다섯 시 아직 파타야의 태양은 작렬하고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1층이 스포츠바다. 당구대도 있고, 스포츠를 중계하는 큰 모니터도 여기저기 걸려 있다. 바의 깊숙이 자리에 혼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건너편 마사지샵과 게스트하우스를 보며 서양 은퇴 노인네들처럼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다.
11시 방향에 코너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웬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바로 내 얼굴이다. 낯설게 느껴진다. 양 눈 밑에 반달 모양의 처진 지방 덩어리가 보이고, 머리는 거의 벗겨져 이마가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언제 저렇게 늙었단 말인가? 하기는 정년퇴직을 했으니 사회적 장례식은 마쳤고, 지금은 육체적 장례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파타야는 처음이다. 신기한 것 천지다. 다양한 종류의 바와 술집이 셀 수 없이 많다. 은퇴한 서양 노인들이 득실득실하다. 무수한 태국 처녀와 여인들이 술집마다 넘쳐나고 있다.
케냐에서 사파리 중에 홀로 있는 큰 코끼리를 본 적 있다. 코끼리나 사자는 무리를 지어 산다. 코끼리가 왜 홀로 있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무리에서 쫓겨난 늙은 코끼리라고 했다. 무리를 이끌던 수컷이 자리에서 쫓겨나면 홀로 방랑한다고…
돌싱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