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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28. 2024

Prestige

특권은 Privilege


대한항공 비즈니스석 명칭이 프레스티지석이다. 특권석 아니던가? 명성을 쌓은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인가? 오랜만에 비즈니스석을 탔다. 16박의 태국 방랑을 마치고 귀국 편을 위하여 보너스 마일리지 항공권을 예약했다. 동남아 갔다가 오는 밤비행기는 정말 피곤하다. 밤새 의자에 앉아 고생하다가 새벽에 도착한다. 그 날은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큰맘 먹고 선택했다.


비즈니스석을 탄다는 것이 자랑인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알던 교회 장로님은 자신은 이코노미석만 탄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회사 대표이기도 하니 외국 출장길에 비즈니스석을 탄다는 것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비즈니스석이란 말 자체가 중요한 비즈니스로 외국 나가는 비즈니스맨이 현지에 도착하여 바로 중요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줄 서지 않는 전용카운터, 인천공항은 없지만 외국공항에는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갖고 있는 사람도 패스트 트랙을 이용하여 짐검사와 출입국검사를 빨리 통과한다. 그리고 항공사 라운지 이용권을 준다. 라운지란 곳이 공항에서의 기다림을 편하게 하는 곳이다. 샤워를 할 수도 있고, 와인과 위스키를 비롯한 술과 음료가 무제한 제공되고, 간단한 식사도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편한 소파에서 계속 무엇인가를 마시고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비즈니스석의 가장 큰 장점은 비행기 안에서 완전히 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기 안의 기압이 낮고, 매우 건조하여 가만히 있어도 피곤한데, 특히 밤 비행기라면 난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 간절함을 나만 이룰 수 있다면 특권이다. 결국은 돈으로 그 특권을 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석의 가격은 일반석의 3배 이상이다. 3명 이상의 좌석을 사서 누워가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인천공항 도착 두 시간 전에 아침식사가 제공되는데 세 가지 메뉴 중에 무엇을 먹겠냐고 스튜어디스가 묻는다. 그러면서 혹시 주무시고 계시면 깨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주무시게 둘 것이냐도 묻는다. 난 깨워달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프레스티지석 아침을 꼭 먹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스튜어디스가 깨우기 전에 눈을 떴다. 2시간 정도 누워서 잔 것 같다. 비행기 안의 조명이 환해지더니 스튜어디스가 내 테이블에 빳빳한 하얀 식탁보를 덮는다. 이제 곧 아침식사를 차려주겠다는 의미다.


하얀 식탁보를 보며 김정운 교수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김교수는 외국 출장길에 호텔에서 자면 기분 좋게 잠이 잘 든다고 했다. 왜 집에서 자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고 잘 잘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러다 깨달은 것이 특급호텔의 하얀 침대시트와 하얀 이불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귀국하여 아내에게 집의 침대시트도 호텔처럼 하얀 것으로 바꾸자고 했단다. 처음에 아내가 반대했단다. 빨리 더러워지니 빨래거리가 크게 느는데 누구더러 하라는 것이냐고. 결국 열심히 돈 더 잘 벌테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간신히 설득했단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구체화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얀 식탁보는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평범한 음식도 더 맛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유명 음식점은 대부분 흰 식탁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런데 비행기가 가볍게 흔들린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사인이 천장에 들어온다. 객실 승무원도 착석하라는 방송도 나온다. 흰 식탁보가 깔렸는데 비행기는 아주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설마 했는데 결국은 터뷸런스 때문에 아침 식사 서비스가 취소되었다. 망했다. 정말 오랜만에 비즈니스석에서 식사를 즐겨보나 했는데...


저 많은 음식은 어떡하지?


보잉 777 항공기가 거의 만석인데 저 많은 아침식사는 어떻게 할까 궁금하다. 내 아침을 도시락처럼 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게이트에 도착한 뒤에 아침밥 먹고 가실 분은 그냥 앉아 계시면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방송 안 하나? 그러면 난 먹고 갈 텐데... 혹시 저 많은 남은 음식을 승무원들이 나눠서 집에 싸가지고 가지는 않을까? 저 음식들을 지금 출발하는 다른 비행기 편에 싣지는 않겠지? 그럼 결국 다 폐기할까? 음식료 제공업체로 보내 혹시 재활용하지 않을까?


배가 고프다. 별 생각이 다 든다.


비행기 타자마자 오렌지주스 한잔, 아침에 사과주스 한잔 밖에 먹은 것이 없네. 왠지 억울하다.

이번 방랑은 운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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